‘경향신문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 3번째 순서로 경향신문의 논설실~!입니다. 취재능력을 십분 발휘해 논설실의 ‘영업비밀’을 낱낱이 파헤쳐보겠습니다. (실은 이 글을 쓰는 평기자인 저도 ‘대선배’들이 있는 논설실에 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흠흠...경향신문의 앙칼진 목소리를 벼리고 또 벼리어 세상에 내보내는 곳, 경향신문 논설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들어오자마자, 손동우 논설위원(좌)과 유병선 논설위원(우)이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오늘 맡은 사설이 없으신지 초큼~ 여유가 있으시네요.
아침마다 경향신문 맷 뒷면을 펼치면 맨 오른쪽에 논설위원들이 만든 사설 3개가 자리잡고 있죠. 1946년 경향신문 창간호부터 경향신문과 역사를 함께 해 온 맛깔나는 미니칼럼 <여적>도 논설실의 작품입니다. <경향의 눈>이라는 칼럼도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칼럼입니다.
경향신문 논설실에는 논설주간과 논설실장을 포함해 모두 10명의 논설위원이 있습니다.
논설실을 총지휘하는 송충식 주간은 논설실 회의를 주재하고 논설위원들이 쓴 사설과 칼럼을 최종 손보는 작업을 합니다. 업계 용어로 데스킹(desking)이라고 합니다.
논설실에서 실제 사설과 칼럼을 쓰는 필진은 8명 정도가 됩니다. 매일 사설3개, <여적>, <경향의 눈>을 써야 하니 전체 필진 중 하루에 ‘등판’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가 되는 거죠. 그날 ‘등판’하지 않는 논설위원은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보고, 자료를 찾으면서 다음날을 위해 칼을 갑니다.
논설위원들은 모두 그 언론사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베테랑입니다. 하지만 논설위원 사이에서도 ‘짬밥’차이가 있다네요. 어떤 언론사는 주로 편집국장 출신들이 논설실에 포진하다보니 데스킹 과정에서 칼럼과 사설에 손대는 일도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논설실의 '짬밥'용어는 이러합니다. 처음 왔으면 ‘초선’, 두 번째 왔으면 ‘재선’ 또는 ‘재수’, 세 번째면 ‘3선’ 또는 ‘삼수’ 이런 식이죠.
송충식 주간은 재선이지만 현 논설실에서 제일 오래 있었던 논설위원입니다.
송충식 주간
신문 더미에 파묻혀 데스킹에 여념이 없는 송 주간이십니다.(머리에 김 나는 거 보이시죠.^^) 술자리에서 뵈면 좌중을 쓰러뜨리는 '유머 종결자'이지만,..이럴 때는 사진만 찍고 조용히 사라져야 합니다. 마감이 임박했을 때 기자들은 성질이 가장 뾰족해집니다. ㅋㅋ
김철웅 논설실장은 초선이지만 송 주간만큼 오래 논설실을 지켜 4,5선급 대우를 받는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특파원과 국제부장을 지내신 김 논설위원. 글도 글의 주인도 진~중 그 자체입니다.
워싱턴 특파원과 국제부장을 했던 이승철 논설위원도 초선이지만 논설실에 오래 계셨습니다. 사진을 찍겠다며 스마트폰을 들이대니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시는 듯 자연스럽게 ‘연출’을 해주시네요.^^
앞서 보셨던 손동우 논설위원은 3선으로 논설실 최다선입니다. 구수한 입담과 필력을 자랑하시는 분입니다.
손 논설위원의 블로그에 들러보신다면,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사태 때 쓴 손 논설위원의 ‘안상수 대통령론’은 꼭 한번 읽어보시라 강추하고 싶네요.ㅋ 완전 빵빵 터집니다.
재선인 노응근 논설위원은 산업부장, 경제에디터를 지냈습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잠깐~‘을 외치시더니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빗을 꺼내들어 머리를 말끔히 빗어올리시네요. 독자에 대한 예의가 반듯하십니다.
서배원 논설위원은 경제부장과 경제에디터를 지낸 분입니다. 자연스럽게 신문을 펼쳐든 모습에서 여유와 연륜이 묻어나지요?
김봉선 논설위원, 이중근 논설위원도 계신데, 이날 마침 논설실에 자리를 비우시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아까 손동우 논설위원과 나란히 얼굴이 나간 유병선 논설위원은 논설실의 가장 막내입니다. 98년 첫 논설위원이 돼 경향신문 사상 최연소 논설위원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논설위원실의 하루는 어떨까요.
오전 9시
출근하면 논설위원 각자가 여러 신문과 뉴스를 찾아보고 사설로 쓸 거리, 칼럼으로 쓸 거리를 찾습니다.
오전10시30분
송충식 주간이 주재하는 논설위원실 회의가 열립니다. 각자 생각한 ‘꺼리’를 내놓고 토론 끝에 그날 사설과 칼럼 주제를 정합니다.
오후 5시
마감시간까지 각자가 맡은 글을 써내는 거죠.
논설실은 매일 야근이 잦은 취재부서에 비해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곳입니다. 하지만 급한 사건이 터지거나 밤 사이에 낮에 벌어진 상황이 뒤집힐 때는 논설실도 함께 대기해 사설을 손봐야 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텐데, 경향신문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사설로 만드는 작업이 쉬울 리가 없죠. 쟁점이 뜨겁고 첨예할수록 기자경력이 20년을 넘나드는 베테랑 기자들은 그야말로 ‘진검승부’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http://seosm.tistory.com
손동우 논설위원은 “그래도 지금은 경향신문 내 의견들이 많이 정리가 된 편이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노사문제, 남북문제 같은 경우 격렬하게 붙었다”며 “때로는 논설위원끼리 이견이 없고 균질한 것보다 박터지게 싸우는 것이 생산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여적(餘滴)>도 그날그날 여러 논설위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중 가장 좋은 것을 채택해 씁니다. 다른 언론사 중에는 당번을 정해 미리 출고하는 체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경향신문 논설실의 방식은 좀 더 순발력 있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여적’은 붓 끝에 남은 먹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의 남은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때 그때 일어나는 여러 이슈 중 하나를 골라 정색하지 않으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읽을거리를 적어내는 칼럼입니다.
필자 개인적으로 <여적>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끄집어내 이야기를 풀어갈까, 신기하다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 비결을 물어보니 “영업비밀”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군요. 아, 파헤치는 데 실패... ㅠㅠ 아무래도 그 비밀은 '내공'이 아닐까요...ㅋ 비밀일 수밖에.
- 인터랙티브팀 이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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