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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람들

[미디어오늘] ‘김대중 평전' 집필 김택근 전 경향 논설위원

미디어오늘 안경숙 기자 | ksan@mediatoday.co.kr  


후배들은 ‘기자에게 정년퇴임은 빛나는 훈장’이라고 했는데, 집에 들어앉으니 집사람의 상실감이 심했다. 근 30년을 회사밖에 모르고 산 사람이란 걸 알아서일까. 집사람이 심란해하니 덩달아 싱숭생숭했다.

두어 달을 지리산 자락에서 지내다, ‘자서전 집필자’로 맺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전 대통령의 ‘평전’을 쓰는 일로 말이다. 그렇잖아도 경향신문에서 함께 일했던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평전을 연재하자고 공을 들여온 터였다. 자서전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구상했던 평전의 구체적인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대중 자서전> 집필자로 널리 알려진 김택근(56·사진)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다음달 1일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프레시안에 <김대중 평전>을 연재한다. 자서전 집필자가 쓰는 평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22일 서울 당산동에서 김 전 위원을 만났다.


 

- 자서전을 쓰는 6년 동안 ‘글 감옥’에 있었다고 했는데, 스스로 평전이라는 ‘글 감옥’에 다시 갇히기로 한 이유는 뭔가.

“자서전을 쓴 사람이 평전을 쓴다는 게 부담이 많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전은 가지를 쳐서 수없이 나올 텐데, 내가 써야만 하는 평전이 있을 것 같았다. 특히 ‘김대중’이라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울림과 감동을 내 방식으로 건져 올려보자는 생각이 컸다.
김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들, 자서전에는 담을 수 없었던 그의 장점들은 다른 사람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평전은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고, 김 전 대통령과의 ‘무언의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평전을 쓰고 싶은데, 자서전을 쓸 때나 지금이나 늘 내 재주가 부족한 게 걱정이다(웃음).”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김대중 평전’이 이미 출간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차별화할 생각인가.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들을 때 자연스럽게 ‘이 얘기는 자서전엔 담을 수 없고, 평전에 담아야 하는 얘기’라는 구분이 생겼다. 한 예로, 김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했을 때 자서전에는 ‘전화가 쇄도했다’거나 ‘누가 슬퍼했다’는 정도로만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눈비에 젖은 김 전 대통령의 포스터에 자기 볼을 비비는 사람, 끊임없이 울려대던 동교동의 전화 등 생생한 묘사를 통해 그의 은퇴 소식에 아쉬워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 김 전 대통령이 추구한 가장 큰 가치는 민주주의와 평화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 가치가 지금 유지되고 있다고 보나.

“김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초기에 서민경제 파탄, 민주주의 후퇴, 남북관계 후퇴를 들어 우리나라가 ‘3대 위기’에 처했다고 얘기했는데, 그 진단이 지금까지 정확하게 맞아들어가고 있다.
남북 관계만 하더라도 김 전 대통령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대 강국이 한반도에서만큼은 불가침 조약을 맺어야 하고, 한반도가 이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선 남북이 통일은 안 되더라도 화해와 협력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고 따른 사람이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다. 4강의 위협에 버티려면 남북이 절대로 긴장 관계로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작금의 남북 관계는 파탄나다시피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 끌고 가는 도덕적 권위가 없다. 국민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뭘 해도 안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 가라’고 했다. 국민의 공감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이 정권은 국민을 이끌고 갈 도덕적 권위가 붕괴됐다.

- 대통령 당선 뒤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해 보수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이 보수 언론의 편파 보도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맞다. 하지만 언론사 세무조사는 그런 ‘피해의식’과는 별개다.
김 전 대통령은 ‘언론이라고 성역을 두면 인생을 정리할 때 후회할 것 같았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다. ‘세무조사 결과 발표로 손해를 많이 봤지만, 지금(퇴임 이후) 생각해도 후회는 안 한다. 만약 안 했다면 후회할 일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언론이라고 탈세를 눈감아줄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주변에서 조사 결과 발표를 반대하거나, 언론사와 ‘흥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본인이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한 서린’ 대표적인 보도로 1989년 ‘주간조선’에 실린 <김대중 평민당 총재 일행의 유럽 순방 동행 취재기>를 꼽으며 “수십 년간 쌓아 온 정치인들의 신뢰가 한두 기자가 쓴 엉터리 기사로 치명적 상처를 입는 참담한 현실”의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조선일보가 △유신 시대는 물론 5공화국 시절에도 수많은 기자와 언론인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그러면서도 국민들을 교묘하게 속여 독재의 나팔수 역할을 했고 △민중의 편에 서기보다는 독재자와 재벌의 이익을 대변해 왔으며 △그럼에도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거나 국민에게 사죄하는 최소한의 양심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수많은 어록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말을 꼽는다면.

“김 전 대통령 일기에 보면, 한여름에 ‘이렇게 더운 날씨에 지하나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울까’ 걱정하는 글이 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다. 인권이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은 그래서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다. ‘지구는 어머니요, 만물은 형제다’라는 말도 좋아하는데, 김 전 대통령은 모든 생명엔 평화가 깃들어야 하고, 사람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오만불손하다고 강조했다. 환경 문제를 이유로 국책 사업이었던 동강댐 건설을 백지화시키기도 했다. 토목공사에 올인하고 있는 MB정권이 이 말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 자서전의 일부 내용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입장을 합리화하거나 비판적 평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카드 대란’을 가져온 신용카드 정책 등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평전은 이런 측면에서 더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깊이 빠져 있고, 인간적 시선으로 많이 바라봤기 때문에 비판의 날이 무딜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김 전 대통령과 만날수록 ‘사악한 기운’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이 잘못한 정책이나 시행착오는 있을지 몰라도,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믿음은 내 글의 한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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