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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법무장관 비서'

12일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중인 권재진 민정수석(오른쪽)




궁금했습니다. 법무장관 후보로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기용설이 나올 때부터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어떤 논리를 내놓을는지요. 5년전 노무현 정부 때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의 법무장관행을 “코드 인사”라며 강력히 반대했던 한나라당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르다는건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은 검찰을 잘 몰랐지만, 권재진 수석은 검찰내 에이스”라고 했습니다. 또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고, 법무장관은 법무행정을 하는 세크리터리(비서)”라고 했습니다. 5년 전엔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이 안된다는 것이 지금은 괜찮다고 돌변한 논리치고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비서’라면 그 밑에 검찰총장이나 검사들은 운전기사나 커피타는 직원쯤 되는 건가요.


2006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가장 전형적인 코드 인사이며 국민 여론을 무시한 오기인사”라고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대선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역시 반대했습니다.


그랬던 한나라당은 이번엔 의원총회에서 모두 13명의 의원들이 발언한 가운데 9명이 찬성 발언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 주자”는게 요지였습니다.
4·27 재보선 참패이후 새로 꾸려진 이른바 쇄신 지도부는 ‘권재진 법무장관 카드’에 ‘노(No)하기는커녕 최악의 회전문 인사를 수용했습니다. 재보선 참패 이후나 얼마전 전당대회 후보 경선에서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해선 안된다”며 목청을 높였던 그들입니다. 청와대의 잘못된 결정에 할 말은 하겠다던 그 결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잘못된 결정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로써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의 수장은 모두 TK와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경북 영주 출신인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행정1부시장을 지낸 핵심 측근입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내 대표적 고려대 라인입니다. 경북 청도 출신 이현동 국세청장은 국세청내 TK인맥의 선두주자입니다.


이 대통령이라고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모를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무리수를 강행했을까요. 임기말까지 사정 권력을 장악해 레임덕에 따른 권력 누수를 막고, 퇴임 후도 보장받겠다는 의도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이대로라면 내년 4월 총선은 한나라당의 패배로 여소야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보입니다. 국회의 과반 의석수를 차지한 정당은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외에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만약 내년 19대 국회가 야대(野大)로 꾸려질 경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놓고 여러 개의 청문회나 국정조사가 열릴 수 있습니다. 한상률 국세청장 의혹과 BBK·에리카 김 의혹 같은 이 정권의 아킬레스 건을 한상대 검찰총장 내정자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서둘러 종결처리해서 공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바로 이런 ‘후환(後患)’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당의 공세 뿐 아니라 과거 정부 임기말 때마다 어김없이 불거진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되풀이된다고 생각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기 동안에도 이럴진대, 퇴임 이후는 어떻겠습니까.
6공의 노태우가 5공의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보내는게 정치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붙였던 것이 바로 이 정권, 이 검찰이었습니다. 다음 정권의 검찰이 자신과 주변을 노무현의 10분의 1이라도 후벼판다고 생각한다면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등골이 서늘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결국 권재진 법무장관-한상대 검찰총장의 사정 라인은 ‘MB 방탄용’이자 ‘퇴임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임기 2년을 채운다면 이 대통령의 퇴임 이후인 2013년 7월까지 그 자리에 있게 됩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검찰 개혁엔 관심없고 집권 말년에 어쨌거나 청와대만 무사히 빠져 나가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비겁한 인사다. 결국 청와대가 이처럼 비상식적인 최측근 인사, 정략인사를 강행하는 것은 검찰권을 장악해 MB 정권비리에 대한 강력한 차단막을 치겠다는 매우 불순한 의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현직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것은 대국민 선전포고”라는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마지막 제동이 걸리리 않는다면 두 사람의 임명은 강행될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새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인사를 두고 “스타일리스트는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스타일리스트는 사전상의 뜻 외에도 원칙대로 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법과 공권력을 가장 중립적으로 집행해야 할 자리에 ‘스타일리스트’ 대신 ‘세크리터리’를 선택했습니다. 그 비서들이 대통령 방탄을 위한 경호원 역할을 잘 하는지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