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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윌리엄 브래튼이 뉴욕 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뉴욕은 살인과 무장강도, 폭력·절도, 마피아들의 싸움 등으로 무정부 상태에 가까울 만큼 혼란스러웠다. 3만6000여명 뉴욕시 경찰관들은 박봉에 위험하고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뉴욕을 브래튼은 재임 2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다. 그가 재임한 94년부터 96년 사이 강도는 39%, 살인 50%, 절도가 35% 급감했다.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신뢰도는 37%에서 73%로 뛰어올랐다. 뉴욕 경찰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직업 만족도는 역대 최고로 나타났다. 

브래튼은 취임 후 자신부터 ‘전기 하수도’라 불릴 정도로 최악이었던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모든 경찰 간부들도 그렇게 하도록 했다. 간부들은 시민들이 매일 겪는 혼돈과 공포를 직접 목격했다. 전임 경찰청장들은 안전한 지하철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경찰관을 배치해야 한다며 인력 타령, 돈 타령만 하다 떠났지만 브래튼은 ‘범죄지도’를 그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범죄가 몇몇 역과 노선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거의 범죄가 없는 곳에도 똑같은 인력이 배치된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범죄가 빈번한 역에 경찰을 집중 배치했다. 무임승차하려다 붙잡힌 사람 7명 중 1명은 수배자였고 20명 중 1명은 무기를 갖고 있었다. 단지 경찰을 ‘핫 스폿(hot spot)’에 재분배했을 뿐인데 추가 예산도, 인력 증원도 없이 범죄율은 뚝 떨어졌다. 76개 구역의 경찰서장들은 매주 부하 직원들에게 지난 한 주간의 성과를 설명해야 했다.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어느 경찰서장이 임무를 완수하고 어느 경찰서장이 게을러 터졌는지 훤히 드러났다. 이런 얘기는 ‘브래튼의 위기탈출 리더십’으로 포장돼 나중에 기업 경영과 마케팅 교재에까지 실렸다.

                                                             조현오 경찰청장 |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우리 경찰청장도 요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범죄율이 떨어져서도 아니요, 경찰 신뢰가 올라서도 아니요, 국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게 돼서도 아니다.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사권 독립이란 선물 때문이다. 국회는 형사소송법에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고, 수사 절차를 종전 법무부령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경찰에 안겨줬다. 마당쇠였던 경찰은 이제 대청 위로 올라가 검찰과 일대일로 마주 앉게 됐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직원들 앞에서 “대한민국 경찰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면서 “수사권 논의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몰랐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환호작약했다. 

실력있는 사람이 ‘빽’ 있는 사람한테 못 당하고, ‘빽’ 있는 사람이 운 좋은 사람한테 못 당한다. 조 청장이 운이 좋다는 것은 잘 알지만, 1954년 형소법 제정 이후 역대 50명의 치안본부장(경찰청장)이 해내지 못했던 수사권 독립 깃발을 그가 치켜들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수사권 선물 보따리는 경찰이 예뻐서 준 게 아니다. 오로지 검찰에 대한 불신과 실망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검찰이 쥐고 있던 권한을 강제로 빼앗아 경찰에 넘겨준 것이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눈치가 좀이라도 있다면 이런 때는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척,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척 쇼라도 하며 넙죽 엎드리는 게 예의다. 그러기는커녕 경찰은 농성 중인 노동자를 응원하러 온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곤봉을 휘두르고 최루액을 뿌렸다.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국회의사당 내 제1야당 대표실에서 일어난 도청 의혹 수사는 병아리 물 먹듯이 한나라당 한 번 쳐다보고 KBS 한 번 쳐다보며 한 달이 다 되도록 주물럭거리고만 있다. 

경찰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경찰청장의 내년 총선 부산 출마설은 믿고 싶지 않다. 치안총수가 집권 여당의 초선 의원을 꿈꾸며 여의도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면 “반MB” “반한나라당”을 외치는 시민이 시민으로 보일 리 만무하다. 경찰이 당당히 수사권을 가져갈 만큼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는지 들은 바 없다. 무슨 무슨 개혁안이라고 발표한 것은 죄다 피의자 고문이나 부정부패가 불거진 뒤에 내놓은 것이고, 그나마도 먹지를 대고 미리 몇 장 만들어 놓은 것처럼 과거의 것과 판박이였다. 

조현오를 브래튼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없고, 축구선수라고 전부 리오넬 메시가 될 수 없는 것과 한가지다. 하지만 브래튼 같은 창발성이나 재간은 없다손 치더라도 경찰이 시민을 그렇게 막 대하거나 우습게 여겨서는 안된다. 야당 대표실을 녹취한 좀도둑만도 못한 쥐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하는 실력으로 수사권을 달라고 앙앙거려서도 안된다. 경찰이 60년 만에 굴러들어온 복을 제 발로 걷어차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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