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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백선엽 만세! KBS 만세!

디지털뉴스 편집장 박래용입니다.

KBS가 지난 주말 백선엽을 6·25 전쟁의 영웅으로 미화한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을 내보냈습니다. 24, 25일 양일간 골든타임인 밤 10시 KBS 1TV를 통해 1시간씩 방송됐습니다. <전쟁과 군인>은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KBS가 기획한 특집 다큐멘터리입니다.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한 KBS 다큐 '전쟁과 군인' 방송화면

방송은 시종 백선엽의 기억과 발언에 의존해 그의 활약을 집중조명했습니다. ‘6·25 영상’은 한국군과 미군의 평양 입성, 다부동 전투 등에서 젊은 백선엽의 얼굴이 담긴 장면을 추렸습니다. 91세, 백선엽은 자료영상을 보며 “감개무량합니다. 일생의 최고의 날입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백선엽 다큐’는 공영방송이 만든 다큐멘터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 개인의 기억과 의견만을 추종했습니다. 미공개 영상이란 것도 미군 행렬 같은게 태반이어서 특별한 사료적 가치는 없었습니다.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나 열강들의 각축 등 무거운 주제는 제외됐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냉정하게 짚지도 못했습니다. 혼돈의 시절, 100만명이 넘는 민간인 피해 사실이나 무고한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그 가족들을 고통속에 살게 한 국가 폭력에 대해서는 1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백선엽에 의한, 백선엽을 위한 방송이었을 뿐입니다. KBS는 “그의 기억은 다시 전장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역사의 길을 찾아야 할까”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레이션을 하며 우리 방송사에 길이 남을 ‘황당 다큐’를 마무리했습니다.

백선엽은 1943년 만주국 소위로 임관해 간도특설대에서 중위까지 복무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하고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때입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활약하는 항일무장단체를 토벌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부대입니다. “조선독립군은 조선인이 잡아야 한다”는 전략에 따라 일본군 장교의 지휘 아래 친일 조선군인들로 구성됐으며, 대부분 자원입대했습니다. 부대원들은 인간도 아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잔혹한 토벌작전을 전개해서 일본군으로부터 많은 훈·포장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독립군의 목을 군도로 자르고 그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 떨쳐 대화혼(大和魂·일본혼)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따르는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하네’


간도특설대의 부대가(部隊歌)입니다. 백선엽도 매일 부대가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가 장교로 복무한 3년 동안 간도특설대는 170명의 조선독립군을 처형했습니다.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대게릴전 미국은 왜 졌나' 중 '간도특설대의 비밀' 장에 실린 백선엽 회고 부분 발췌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 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간도특설대에서는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하였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조선인을 토벌한 사실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그가 해방 후 이제까지 간도특설대의 친일 전력에 대해 참회하거나 반성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백선엽은 같은 동포를 토벌하고 죽이면서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후회하지도, 사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며 자신의 친일행각이 정당하다고 외쳤습니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퉈볼 것도 없이 그의 회고록 자체가 민족 반역행위의 시인이요, 자술서입니다.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이런 민족 반역자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를 엄혹하게 처단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구의 절반을 돌며 아르헨티나까지 쫓아가 유대인 학살의 원흉 아돌프 아이히만을 잡아 교수대에 세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1945년 한반도 남쪽에 진주한 미 육군 태평양 총사령부가 낸 포고문 제1호는 ‘정부, 공화단체 또는 공공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명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직무에 종사할 것’(제2조)이었습니다. 군정의 총책임자인 하지 중장은 “군정 운영의 효율과 능률을 고려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방후 기득 세력이 하지 중장의 귀를 잡고 “지금은 바쁜 때이니 그들을 처단할 수는 없지 않소”(우남실록)라고 입김을 행사한 결과입니다. 하지의 결정으로 미 군정이 고용한 7만5000여명의 한국인 중 대부분은 일제 치하의 옛 관리들이었으며 이들은 종전 자리에 그대로 앉았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못 배우고 못 먹고 사회 빈곤층에 머무는 사이 이들의 후손들은 자자손손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민간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를 한 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은 모두 4776명입니다. 간도특설대의 경우 그 활동이 특히 악랄하여 장교는 물론 말단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습니다. 친일사전에 오른 당사자 가족과 우파단체들은 등재금지 또는 명예훼손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백선엽(이 대통령 오른쪽)이 지난 24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61주년 참전유공자 위로연'에 참석, 순국선열과 참전희생용사에 대한 묵념을 올리고 있다.


해방 후 간도특설대 출신들은 토벌작전 경험을 무기삼아 제주 4·3 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주력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전 발발후 백선엽은 나이 32세에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백선엽이 6·25 전쟁에서 전과를 세웠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국가기간 방송을 자처하는 KBS가 백선엽을 우리 민족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군인으로 미화시킨 것은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KBS는 항일독립운동단체 등 31개 단체가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백선엽 다큐’ 방송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KBS는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주구(走狗) 노릇을 한 인물을 이 시대 대한민국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백선엽은 이보란 듯이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서 6·25 참전 유공자와 원로 장성 등 전 참석자를 대표해 “이 모든 것을 위하여”라며 건배를 선창했습니다. 화려한 부활입니다. KBS는 8월에는 독재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포장하는 또 다른 특집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수신료를 더 올려달라고 하니 통탄할 일입니다.

조국 광복의 일념으로 차디찬 이국 땅에서 피흘리며 쓰러진 순국 선열들께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간도특설대에 학살된 애국 지사들께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선열들께서 후손에게 물려주려 한 해방 조국은 이런 나라가 아니었을터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의는 아직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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