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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대통령의 분노


디지털뉴스 편집장 박래용입니다.

아침 신문을 펼칠 때마다 저축은행을 둘러싼 감춰진 비리속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기사의 홍수 속에 이 기사가 저 기사같은 정보가 매일 이어지고 있으니 정신없으시죠.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저축은행 부실이 발생한 때부터 지각 퇴출에 이르기까지 누가 어떻게 뒤를 봐줬느냐는 것입니다.

부산저축은행만 살펴볼까요. 부산 계열 5개 저축은행은 한 마디로 대주주 몇 사람의 사금고였습니다. 이들은 대주주에게 은행 돈을 빌려주지 못하도록 한 법망을 피하려 120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운 다음 은행 돈 7조원 중 5조3400억원을 자신들의 투기적 사업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에 따른 부실을 감추려 수년 동안 회계분식에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했습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에 대한 준비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민사대법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그리고 대주주와 경영진은 배당금과 연봉, 보너스를 수백억원씩 챙겨갔습니다. 금감원 아무개, 금감위 아무개, 감사원 모모 등이 불법과 비리를 눈감아주고 뇌물을 받아 챙겼습니다. 이런 비리는 콩떡에 달라붙은 콩고물 수준의 비리입니다. 돈 받아 먹은 공무원들이 어디 한 두명이겠습니까. 

이번엔 시기별로 한번 볼까요.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 12월 울산지검 수사로 내부의 심각한 비리가 확인됐음에도 감독기관의 합당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3월에는 켐코가 이 은행 관련 특수목적법인이 갖고 있는 문제 투성이 토지를 사들였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으로부터 500억원씩 투자받아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맨 입에 맨 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 곡절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금감원 등 감독기관은 지난해 저축은행 경영건전성 실태조사로 문제의 실체를 대부분 파악해놓고도 미적거렸습니다. 눈을 감아준 수준이 아니라 아예 뒤로 돌아서버린거죠.

이들은 올 2월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극한지경에 이르러서야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켰습니다. 영업정지 전에 힘있는 사람과 친인척은 맡긴 돈에 이자까지 다 붙여서 빼내가고, 힘없는 서민들만 생떼같은 돈을 날렸습니다. 조사 종료 이후 8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해둔 이유는 현재 물음표 상황입니다. 세간에는 작년 11월 열린 G20 정상회의때문에 조치를 미뤘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개각 문제를 꼬집은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만평. 2009년 9월 15일

이런 어처구니없는 금융범죄가 이뤄지고 있는 동안 금융감독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인사의 잘못입니다. 감시감독을 해야 할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 한 명만 있었다면 국내 최대 저축은행그룹의 속속들이 썩어 들어간 부패와 비리는 아마 수년 전에 제동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나라입니다.

은행은 신뢰가 생명입니다. 내일 모레 망할 은행이라면 누가 돈을 맡기겠습니까. 그 신뢰는 국가가 담보합니다. 국가는 은행에 대한 검사와 감독을 엄정하고 세밀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감시감독기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직무상 의무 위반입니다.

감사원은 국가 최고 감사기구입니다. 감사위원은 6명. 대법원으로 치면 대법관에 비견되는 자리로 감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입니다. 그런 자리에 대선 캠프 출신에 지난 총선 때 이곳 저곳 공천을 시도하다 떨어지고,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49세 젊은 측근을 앉혔습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감사위원은 수십년 공직생활을 끝마치고, 자식들도 성장시켜 더 이상 돈 들어갈 데가 없고, 인생 말년에 명예롭게 은퇴하는 일만 남은 사람을 시켜야 하는 자리”라고 하더군요.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적격이란 얘기겠죠.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위원 임명장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은진수씨를 감사위원에 내정했을 때 BBK 사건 방패막이 역할에 대한 보은인사라는 비판여론이 비등했으나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은씨는 지난해 저축은행 감사 때 ‘브로커 의혹’을 받을 정도로 감사원 내부에서 문제가 됐으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은 불법대출로 영업 정지된 삼화저축은행의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매 달 200만원 안팎을 받았지만 “뭐가 문제냐”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기관 임원이나 사외이사로 진출한 ‘낙하산 인사’는 모두 53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등 고려대 출신 9명,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인수위·대선캠프 출신 8명, 소망교회 출신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동지상고 출신인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 모두 24명(1명 중복 계산)이 회장·사장 등으로 금융계에 진출했다고 금융노조는 밝혔습니다. 사외이사로는 인수위·대선캠프 출신 14명, 고려대와 소망교회 출신 5명, 정부 출신 3명 등 모두 34명(4명 중복 계산)이 임명됐다는군요.

그런 이 대통령이 은진수 감사위원의 비리를 보고받고 격노했다고 합니다. 2년 전 온갖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감사위원 임명장을 주었던 사람이 대통령입니다. 그런 당사자가 분노를 표시했다고 하니 당혹스럽습니다.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인사 실책을 통절하게 반성해야지 화를 낼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온갖 비리 다발이 드러나는 모습에 정작 분노해야 할 사람은 국민이니까요.

세간에는 부산저축은행은 삼화저축은행의 비리 커넥션에 비하면 ‘새발의 피’란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삼화저축은행 비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그 시커먼 막장 비리 드라마를 지금부터 지켜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