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뉴스 편집장 박래용입니다.
4·27 재·보선이 불법에 관권개입에 온갖 부정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가 떠오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친여 보수언론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합니다. 이 역시 자유당때와 흡사합니다. 지금 선거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강릉 한 펜션에서 적발된 전화홍보원들이 얼굴을 담요와 옷으로 가린 채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연합뉴스
강원 강릉에선 불법선거의 생생한 현장이 적발됐습니다. 펜션이 한나라당의 비밀 선거사무소로 둔갑했습니다. 그곳에서 알바로 고용된 전화홍보원 30여명이 임차한 휴대폰으로 “안녕하세요. 한나라당 기호1번 엄기영 후보 선거사무실입니다…”라고 쓰여진 홍보문건을 읽었습니다.
한나라당은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홍보원들은 “애 학원비 벌려고 알바로 나갔다” “일당 5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방으로 쓰인 펜션은 한달 전 예약됐고, 총 경비는 1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장에선 동계올림픽 유치 서명 명단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침대 시트에서는 급하게 숨긴 ‘엄기영 평창올림픽 민단협 회장’ 명함이 나왔습니다. 현장 지휘 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는 최OO씨는 민단협 엄 회장 밑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엄기영 후보는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서명을 해달라며 강원도 전역을 돌았습니다. 강원도민들은 흔쾌히 서명했고, 격려하고 박수를 쳐줬습니다. 그렇게 모은 강원도민의 명부가 고스란히 펜션 한 구석에서 발견됐습니다. 올림픽 유치를 바라는 강원도민들의 간절한 비원(悲願)이 담긴 명단을 들고 엄기영 후보는 자기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엄기영 불법 전화홍보원’ 33명 강릉 펜션서 적발
엄기영 불법선거 뒤에 ‘여당 조직’
‘엄기영 불법홍보’ 전화방 경비 1억원 추정… 한 달 전 펜션 현찰 계약
엄기영 후보 전화홍보원 “자원봉사는 무슨… 일당 5만원 벌려고 갔다”
앵커 출신의 대응은 더 기가 막힙니다. 엄 후보는 홍보원들이 얼굴을 가린 데 대해 “TV 카메라를 대동하고 와서 (부끄러워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최문순 후보의 천안함 발언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흥분해 벌인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엄연히 강원도민의 선택이겠죠. 분명한 것은 과거 엄기영 앵커가 진행하던 MBC 9시 뉴스데스크를 봤던 그 시간이 아깝고 분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를 공정하고 반듯한 앵커로 포장했던 뉴스데스크 PD의 재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이상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22일 국민참여당이 공개한 특임장관실 직원이 사용한 수첩. 김해을 유권자들의 인적상황을 파악한 내용들이 빼곡이 적혀있다./폴리뉴스
경남 김해을에선 관권선거의 꼬리가 잡혔습니다. 한 가게에서 발견된 ‘특임장관실’ 로고가 찍힌 수첩이 유력한 단서입니다. 파란색 수첩에는 김해을 선거와 관련한 각 정당과 후보들의 동향, 지역별 유권자 민심 등이 12쪽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OOO헤어, 30대 미용사, 양비론” “택시, 남, 50대, ①” “에스프레소 전문점, ⑧”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①은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 ⑧은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의 기호입니다.
수첩의 주인은 특임장관실 소속 신모 시민사회팀장으로 확인됐습니다. 신 팀장의 고향은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와 같은 거창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첩에는 또 다른 두 사람의 실명이 적혀 있는데, 한 명은 신 팀장이 근무하는 시민사회팀 소속 직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특임장관실 소속 지역직능팀 소속 직원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첩 주인은 처음 가게를 찾아와 자신을 고향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종업원 등에게 선거와 관련된 상황을 물었다고 합니다. 수첩을 분실한 뒤에는 가게에 전화를 걸어와 “수첩을 잃어버렸다. 수첩에 직장 마크가 찍혀 있어 꼭 찾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 가게 주인의 전언입니다. 수첩을 찾으면 연락해달라고 남겨놓은 전화번호는 정확히 신 팀장의 휴대폰 번호와 일치합니다.
특임장관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역시 오리발입니다. 특임장관실은 “수첩은 기념품으로 9000부 가량이 제작돼 그동안 내방객 및 행사 참석자, 새해 선물 등으로 6500부 가량 배포됐다. 특임장관실 수첩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임장관실 직원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특임장관실 직원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순순히 인정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갑니다. 앞서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20일 친이계 의원 36명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4·27 승리를 위한 작전회의라고 보면 된다”고 얘기한 바 있죠. 장관이 전시 사령관을 자처한 마당에, 해당 선거구에 연고가 있는 직원들이 작전에 동원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김해을 관권개입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는 건 그닥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질질 흘리고 다닌 증거와 증인들이 워낙 뚜렷합니다. 수첩 주인이 방문한 다른 곳에서 CCTV에 찍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수첩 주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봐야겠습니다.
경기 분당을에선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분당을 주민들에게 민주당 손학규 후보측을 사칭한 것으로 추정되는 ‘괴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손학규 후보캠프에서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란다면서요’” “유시민 대표나 강기갑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 성질을 돋군다는건데요. 사실이라면 60년대 판을 쳤던 전형적인 네거티브 공세입니다.
이번 4·27 재보선은 역대 불법·관권·타락선거 상위 랭킹에 당당히 올라갈 듯 합니다. 심판격인 선관위는 공정성을 의심받은지 오래입니다.
언론은 어떤가요. 방송사와 친여 보수언론은 “선거전이 과열·혼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며 양비론에 물타기로 본질을 흐려놓고 있습니다. 뉴스의 앞 부분은 서태지·이지아가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에선 “TV뉴스와 연예가중계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한탄이 거셉니다.
지난 22일 KBS, MBC 뉴스 화면. 미디어오늘 기사 중.
누군가 이런 불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무슨 일을 벌일지 끔찍합니다. 이대로 방기하면 우리 정치사는 수십년 뒤로 후퇴할 것입니다.
유권자가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악당 정치인을 가려내는 일은 시민의 몫입니다. 과거 많은 선거가 부정과 불법으로 얼룩졌지만, 결국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는 이만큼 왔습니다. 다시 한번 그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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