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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가 묻는다

‘6월 항쟁’의 기록들

10일 '6월 민주항쟁' 27주기를 맞았습니다. 1987년 6월10일부터 6·29선언이 있기까지 약 20일 동안 계속된 민주화시위를 일컬어 '6월 항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흔히 '피흘려 얻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씁니다. 6월 항쟁은 과거에 묻혀 있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무수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6월 항쟁의 현장들을 다시, 꺼냈습니다. 


6월 항쟁

1987년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구타와 물고문을 당하다가 숨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해 4월13일 대통령 전두환이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 이양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종교계 및 재야 각 단체에서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이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새로 창당된 통일민주당은 재야와의 공동투쟁을 위한 연계를 모색, 5월 27일 범야권 연합조직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발족시켰고, 5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을 대표하여 김승훈 신부가 발표한 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축소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확산됐습니다.

국본은 6월10일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 규탄대회를 민주헌법 쟁취투쟁과 결합시켰습니다. 바로 전날인 6월9일 교내시위 도중 경찰이 쏜 직격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이한열(20살, 경영학과 2년)이 사경을 헤매는 사건이 발생하자, 12일 연세대생들의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연세인 규탄대회>를 계기로 전국 각 도시로 최루탄발사 규탄시위가 확산됐습니다. 

19일과 20일에는 시위의 중심이 광주·순천 등지로 옮겨져 이 지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됐습니다. 24일 전두환과 김영삼 민주당총재의 여야 영수회담이 결렬되자 26일 국본은 평화대행진을 강행, 전국 33개 도시와 4개 군·읍 지역에서 100여만명이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6월 29일, 노태우는 ‘6․29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벌여온 국민들 앞에 항복 선언을 했습니다. 직선제 즉각 수용, 김대중 사면복권 단행, 양심수 석방과 언론자유 보장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직선제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케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사무직 노동자 등 중산층이 대거 참여, 국민전체가 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보여준 6월항쟁은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뜨거워져온 국민의 민주화 열기가 폭발한 사건으로 제5공화국의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참고 자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이야기]6월항쟁 승리의 주역 

-[네이버 지식백과] 6월항쟁 [六月抗爭]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9.10, 가람기획)

◆ 만화로 보는 6월 항쟁 

1987년 6월항쟁을 소재로 한 만화 ‘100℃’가 e북 형태로 나왔습니다. 만화작가 최규석씨가 쓰고 그린 163쪽 분량의 만화입니다. [만화보러가기]


■ 6월 항쟁 사진들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6월10일 '박종철 고문살해 은폐조작 규탄대회'로부터 6·29선언이 발표될 때까지 전국은 연일 시위로 들끓었다. 사진은 6월18일 부산의 시민·학생들이 비를 맞으며 부산진 시장에서 서면로터리, 부산진구 전포동 네거리를 잇는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6월10일 서울 남산 3호터널 앞에서 대학생들이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6월 항쟁 당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돌진하는 경찰들/경향신문 자료사진


6월 항쟁 당시 경찰의 무차별 최루탄 발포에도 끝까지 시위 현장을 지키는 시위대의 모습/경향신문 자료사진


명동성당 앞 구국기도회 미사 장면/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체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긴 했으나 올바른 민주주의 정착에는 실패했다는 학계의 진단이 나왔다. 사진은 6월항쟁 당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6월항쟁 동안 시위대의 뒷바라지를 맡아준 상계동 철거민들을 위해 촛불시위를 하는 시위대 /경향신문 자료사진



  6월 항쟁 시위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민정당사를 찾은 구속자 가족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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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기념사업회 [아카이브즈]에 들어가시면, 경향신문이 기증한 당시 사진들을 비롯한 그 당시 현장 사진을 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6.10 민주항쟁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 책임을 묻는 고려대 학생들이 ‘교수님에게 부치는 편지’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게시했습니다.

고려대 불손한 제자들 "교수님들, 그만 가만히 있길 바랍니다"



 고 이한열 열사(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의 27주기 추모제도 서울 연세대 백양로 삼거리에서 열렸습니다. 고 이한열 열사 27주기 추모제 열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27주기에 맞추어 9일 서울 서대문구 노고산동에 고 이한열 기념관을 유품보존 전문시설로 바꾸어 박물관으로 재 개관한다. 당시 입었던 '마지막 티셔츠'등유품과 자료등을 영구보존 전시한다.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