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가수 서태지가 배우 이지아와 부부사이로 재산분할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으로 세간이 시끌시끌합니다. 1996년 충격적인 은퇴 이후 서태지는 개인 앨범을 내는 것 외에 어떤 연예활동이나 방송출연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생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니, 유명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터졌을 '열애설'한번 없었지요.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초반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사회의 '스캔들'이자, 중요한 '문화현상'이었습니다. 서태지가 우리 사회에 남긴 '스캔들'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1990년대 초반 그 존재 자체만으로 한국 사회의 '스캔들'이자, 중요한 '문화현상'이었습니다. 서태지가 우리 사회에 남긴 '스캔들'을 살펴봤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서태지가 일으킨 최대 '스캔들'은 충격적인 은퇴 선언이었습니다. 15년전인 1996년 1월22일, 최정상에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연 은퇴를 선언한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퇴 기사는 경향신문 1월23일자 1면을 장식했습니다.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국의 핵심변수였던 이회창 국무총리가 신한국당에 입당하는 내용을 다룬 기사가 1면 톱기사였다는 점을 보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 던진 충격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이후 그들의 열성팬들은 심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서태지 히스테리' '서태지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한 학부모는 "딸아이가 어제 내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서울 서태지집에 갔어요"라며 속상함을 토로합니다.
10대 팬들은 학업과 식음을 전폐하고 서울 연희동 서태지의 집앞으로 달려가 '컴백홈'을부르며 절규했습니다. 아래 기사 사진을 보면 서태지 집 담벼락이 팬들이 남긴 격문과 낙서로 도배가 돼 있습니다.
은퇴선언 이틀 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배후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첩보가 입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까지 있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수필집 발간, 싱글앨범 발매,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등 '서태지와 아이들'을 추억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쏟아내면서 제2의 서태지 열풍을 불렀습니다.
1999년 5월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음악에 미친 문화적 영향을 살친 문화비평서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서태지와 표현의 자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서태지의 4집 앨범 '시대유감'의 가사 일부입니다.
서태지가 새 앨범마다 들고나온 파격적 형식과 거침없는 노랫말은 권위적인 '공연윤리위원회'와 필연적 갈등을 불렀습니다.
1995년 4집 앨범 수록곡 '시대유감'의 가사로 시작된 '표현의 자유 논란'은 한달넘게 한국사회를 달군 대형 '스캔들'이었습니다.
당시 공륜은 사전심의에서 '시대유감'의 가사가 부정적이라며 일부를 고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서태지는 이를 거부하고 가사를 아예 빼버리고 연주곡만 담아 음반을 발매하며 '항의'했지요.
KBS는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라는 곡이 가사가 유해하다며 자체 방송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앨범은 3주만에 1백만장이 팔려나갔습니다.
서태지와 공륜의 갈등은 가사 임의수정 논란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공륜이 4집 수록곡 중 '필승'등 3곡의 가사가 실제 음반에 수록된 것과 사전 심의를 위해 공륜에 제출된 것이 다르다며 4집 앨범을 판매금지하겠다고까지 한 것입니다.
문화권력으로까지 성장한 서태지였기에 공권력과 맞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당이 진상조사위원회까지 만든 것을 보면 당시 사회적 파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태지는 4집 앨범의 타이틀곡 '컴백홈'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미국 팝그룹 '사이프레스 힐'의 노래의 전체 구성, 메지시, 리듬, 창법까지 거의 유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입니다.
당시 표절 의혹은 음악평론가 사이에서도 엇갈려 결국 방송사들은 '컴백홈'과 '사이프레스 힐'의 곡을 동시에 내보내 시청자들의판단에 맡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한국사회 뜨거운 논쟁을 부른 사전심의제도는 이듬해인 1996년 6월 7일 폐지됩니다. 서태지의 '시대유감'은 다음달 싱글앨범으로뒤늦게 세상 빛을 봅니다. 아래 기사는 표현의 자유 논란이 한창이던 그때 경향신문이 서태지 문화현상을 분석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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