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번 고검장급 인사는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하나는 고검장 순환 배치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참 뜬금없는 인사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는 2009년 8월 이후 조직안정 차원에서 유임됐던 고검장급 검사들을 순환배치함으로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설명이다. 통상 검찰 수뇌부 인사는 검찰총장 임명 후 후속 인사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다. 현 김준규 검찰총장은 올 8월 임기만료다.
새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나머지 동기들은 용퇴하는게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현 고검장급 고위간부 9명 중 6명이 사법연수원 13기, 3명이 14기이다. 만약 13기 중에서 임명되면 동기 5명이, 14기가 임명되면 고검장 대부분이 옷을 벗을 판이다. 어느 경우에도 6개월 뒤에는 대규모 수뇌부 개편이 예고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둘러 ‘6개월짜리 인사’를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느닷없는 인사를 하니 이런저런 뒷말도 많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검장급 인사 얘기는 지난 연말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찰 출신인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이 물러나자 현직 고검장급 1명이 헌법재판소로 자리를 옮김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사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차제에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이 교체를 희망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 등 주요 수사가 비판 여론에 부딪치면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날 것에 대비해 비켜 앉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가 고향인 대구고검장을 희망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결과적으로 새 헌법재판관에는 현직 고검장이 아닌 박한철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내정되면서 인사 요인은 사라졌다. 고검장급 인사설도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런데도 인사는 강행됐다. 검찰총장의 반대에도 청와대가 밀어붙였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정 라인은 권재진 민정수석(10기)-김준규 검찰총장(11기)-이귀남 법무장관(12기) 순으로 거꾸로 서 있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두 선배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청와대의 메신저 역할을 수행한 이 장관은 김 총장과 만나 인사안을 논의했으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권은 청와대와 법무부가 쥐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이었다. 법무연수원장→대검 차장→서울고검장→서울중앙지검장→대구고검장→부산고검장→법무연수원장 식으로 ‘돌려막기’한 인사였다.
빈 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인사를 하다 보니 결국 자리를 서로 맞바꾸는 그림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상대 서울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내려온 것은 전례가 없는 이변이다. 중앙지검장이 핵심 요직이라고는 하지만, 수도권 9개 지검과 11개 지청을 관할하는 서울고검장이 자신이 거느렸던 산하 지검장으로 이동한 것은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인사다.
반면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본인의 희망대로 대구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 고검장은 경북 상주에 고려대 출신에다 공안통으로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다.
검찰내에선 TK에 고려대 출신을 ‘진골’이라 부른다. 노 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1년 5개월 동안 민간인 사찰 수사는 흐지부지하고, 한명숙 전 총리는 1심 무죄가 나고, 그랜저 검사는 무혐의 종결했다가 재수사 수모를 겪었다. 정상적이라면 문책을 당해도 몇 번은 당했어야 할 부실수사·표적수사의 장본인이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노환균 구하기’ ‘숨고르기용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한 전 총리 사건이 2심에서도 무죄가 날 경우 직격타를 맞을 것에 대비해 잠시 비를 피하도록 배려한 인사라는 것이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차기 검찰총장 임명 때까지는 한 전 총리 2심 선고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비켜있다고 비를 피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번째 포인트는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의 전격 사퇴다. 그의 사퇴는 이번 고검장 인사와는 별개의 ‘돌출 변수’다.
무엇보다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급은 대상도 아니고, 계획에도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러 얘기를 종합하면 한화·태광그룹 수사에서 보여준 무리한 수사에 대한 재계의 불만과 우려가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거론됐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특히 지난 24일 한화 임원 5명에 대한 무더기 영장 청구가 전원 기각되는 결과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고 한다. 서부지검은 수사 5개월 동안 한화 본사와 계열사 20여곳을 압수수색하고, 임직원 300여명을 800회 이상 소환하며 밀어 붙였지만 구속영장은 한 건도 발부받지 못했다. ‘오기 수사’ ‘먼지털이식 수사’라는 비판은 재계 뿐 아니라 검찰 내에서도 나올 정도였다.
이때문에 그를 인사조치한다는 설이 불거졌다. 대검 형사부장으로 보직이동시키려 하지만, 그의 저항과 후배들의 동조 반발이 두려워 인사를 미루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의 교체 의견은 불필요한 조직의 동요를 불러 올 수 있어 일단 보류하고, 다음 인사 때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남 지검장은 이런 ‘교체설’ 속에 먼저 사표를 던지는 선제 공격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름 명예를 선택한 셈이다. 이를 두고 '검객의 퇴장'이니 '구시대 수사의 종언'이니 해석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가장 좋은 수사는 '피의자도 승복하는 수사'라고 봤을때 그의 거칠고 저돌적인 수사 스타일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 남 지검장의 사퇴는 검찰이 이제 의욕만 앞세우는 낡은 수사 관행에서 벗어날 때가 됐음을 보여준다.
남기춘 검사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수사 책임을 자신이 모두 떠안음으로써 수사팀의 상처를 최소화하려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검찰을 떠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아쉬워하는 것도 선배 검사로서의 이런 기개 때문이다.
노환균 고검장은 한 전 총리, 민간인 사찰, 그랜저 검사 수사 등에서 보듯 검찰 신뢰를 떨어뜨리고 조직에 누를 끼친 것으로 따지면 훨씬 심각했으면 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는 어떠한 책임도 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권은 오히려 그를 구하기 위해 고검장들을 한 칸씩 자리를 옮기는 꼼수를 쓰기까지 했다.
남기춘과 노환균. 둘의 행로를 보며 후배 검사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행동할까.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했다. 이런 식의 인사로는 백년이 가도 바로 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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