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뉴스 편집장 박래용입니다.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작전을 펴고 있는 해군. 영화 '에어포스원'의 한 장면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요일 새벽에는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8강전에서 중동의 강호 이란을 꺾고 승전보를 알려왔습니다. 스포츠에 목 매는 타입은 아니지만, 어찌하다보니 저도 전·후반에 연장전까지 꼬박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니 새벽 4시더군요. 가슴을 졸이며 제법 볼 만 하던데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어린 선수들의 눈부신 발전이 확인됐다고 하더군요. 향후 대표팀 세대교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니 역시 흐뭇한 얘기입니다.
그 전엔 우리 해군의 특수전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고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전원 구출했다는 소식이 있었죠.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 낭보였습니다. 만의 하나 구출 작전이 실패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면 국민은 얼마나 심란했을 것이며, 나라는 또 얼마나 시끄러웠겠습니까. 우리 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이번 작전을 꼼꼼히 살펴보려는 시각과 목소리는 파묻히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은 작전 종료후 “석해균 선장이 배에 관통상을 입었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지만 실제는 복부 출혈에 양쪽 무릎과 왼쪽 팔 골절 등 심각한 상태였다고 병원측이 확인했습니다. 석 선장은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군이 작전 성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장의 총상을 경미한 것처럼 축소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선장의 사례에서 보듯 인질들의 안전 대책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에서 작전이 결행됐는지도 짚어볼 대목입니다. 러시아 군이 테러범과 함께 인질 수백명의 목숨을 잃게 하는 군사작전을 펼친 것을 놓고, 이것을 구출작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언론에선 해외 성공사례만 부각시키고 있지만,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해군의 구출작전 후 “대부분의 국가가 선원 안전을 고려해 이런 시도를 피하고 있다”면서 “매우 드문 사례”라고 보도했습니다.
1차 작전에서 삼호주얼리호로 접근하는 우리 UDT요원 3명이 해적의 총격에 부상을 입고 퇴각한 것도 위험천만한 작전이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작전 실패는 인질들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AP통신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느리고 약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던 이명박 정부의 승리”라고 분석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외교·안보부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청와대로부터 국격을 위해서라도 구출작전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계속 전달됐다. 희생자가 나오더라도 강행해야 한다고 해서 뭔가 쫓기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연평도의 대가를 소말리아 해적들이 받은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대통령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군의 공식 발표 이전에 직접 춘추관 기자실을 찾아 “저는 어제 오후 5시 12분 국방부 장관에게 인질 구출작전을 명령했다. 우리 군은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해냈다.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좀 낯선 장면입니다. 통상 이런 경우엔 대변인 입을 통해 대통령 일성을 전하는 정도가 상례입니다. 더 나아가면 함장이나 UDT팀장과의 화상통화가 이어졌겠죠. 문득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외계 침입자를 물리친다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와 대통령 전용기내 테러범들을 종횡무진 혼자서 무찌르는 <에어포스 원>이 떠오르더군요. 공(功)은 부하에게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십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난데없는 출현을 놓고 인터넷에선 “군이 받을 칭찬을 대통령이 가로챘다” “작전이 실패했을 때도 ‘이 작전은 내가 지시했다’고 했겠는가”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주도 방송과 신문 등 온 언론은 작전 성공을 극찬하는 보도를 쏟아낼 것 같습니다. 정부와 언론의 ‘아덴마 마케팅’ 합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삼호주얼리호가 오만에 입항하고, 선원들이 귀국하고, 해군이 개선할 때도 이벤트는 차고 넘칠 것입니다. 모쪼록 선원들의 무사 귀환과 작전 성공을 축하하는 것과는 별도로 앞으로 또 다른 피랍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냉정한 분석과 검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원장 후임 인선은 아무래도 설 이후로 늦어질 것 같습니다. 감사원장 임명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므로 능력은 물론 도덕성과 청렴성 등 따져야 할 조건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동기 전 후보자처럼 또 한번 낙마 사태가 벌어진다면 정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레임덕 현상이 속출할 것입니다. 썼던 사람을 다시 쓰는 ‘돌려 막기 인사’를 할 수도 없고, 뉴 페이스를 기용하자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나올 수 있고, 이래저래 고심은 깊어질 듯 싶습니다.
구제역 재앙이 도대체 끝이 어디일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살처분이 240만 마리를 넘어섰고, 보상금과 방역비만 2조원 이상 지출이 예상됩니다. 초기 대응 실패와 방역 대책이 구제역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현안을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대통령 입만 쳐다보며 중요 고비때마다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유 장관은 지난해 8월 친박 배려 차원에서 입각했는데 당시에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구제역이 막을 수 없는 천재(天災)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좋은 소식에서 시작해서 끝은 결국 어두운 얘기로 마무리됐네요.
강추위가 다시 이어질 것이란 예보입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설 잘 보내십시오.
'편집장의 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장의 눈]삼각파도 맞는 대한민국 (1) | 2011.02.14 |
---|---|
[편집장의 눈] 검찰 인사의 내막 (1) | 2011.01.31 |
[편집장의 눈]저널리즘 원칙을 되새기며 (0) | 2011.01.03 |
[편집장의 눈] '양지탕'의 추억 (0) | 2010.12.20 |
[편집장의 눈]전쟁 대차대조표 (0) | 201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