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한 지난 1년여간의 뉴스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했습니다.
2013년 1월 20일
국가정보원은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등 혐의로 북한 화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체포했습니다. 이 때부터 이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고 불렸습니다. 다음달 26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유씨를 구속기소합니다.
2013년 4월27일
서울시 공무원이 탈북자 명단을 북한에 넘겼다는 간첩 사건이 국가정보원에 의해 조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간첩 혐의로 기소된 서울시 계약직 직원 유우성씨를 변호하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는 “유씨의 여동생이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6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며 국정원 수사관들의 회유와 협박 끝에 허위로 오빠의 혐의를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7월 검찰은 유씨에 대해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지만
2013년 8월22일
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법원은 여권법 및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만1170원 선고을 선고했습니다.
‘공무원 간첩’ 무죄… ‘핵심 증인’ 여동생의 모순된 진술이 결정타
2013년 10월2일 서울고법에서 유씨 사건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23일 법원은 민변 및 검찰 요청에 따라 양쪽에서 증거로 제출한 출입경 기록등에 대한 사실조회를 중국 측에 요청합니다.
2014년 1월 7일
민변은 검찰이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며 국가보안법상 무고와 날조죄로 성명불상자를 경찰청에 고소했습니다. 이날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국정원은 가짜 간첩을 만들어냈나…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의혹
그러나 1심 법원은 지난해 8월 22일 유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에도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유죄증거 가운데 일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만약 국정원과 검찰이 의도적으로 유씨를 탈북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날조하거나 조작·은폐했다면 이는 국가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7일 일명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유씨의 변호인단이 “검찰이 재판에서 조작·날조된 증거를 제출했다”며 ‘성명불상자’를 상대로 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소장에 적힌 혐의는 국가보안법위밥상 무고·날조죄였다.
고소취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소인들은 2013년 2월 및 2013년 9월 고소인(유우성씨)으로 하여금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하여 증거를 날조·은닉하였기에 고소하오니 엄중히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 북한에서 찍은 사진으로 둔갑
검찰의 증거날조는 항소심 재판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 아니었다. 검찰은 1심에서 유씨의 국가보안법위반(간첩) 증거로 2012년 1월 21일 및 2012년 1월 23일 유씨가 북한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었다. 검찰은 그러나 유씨가 사진촬영에 사용한 아이폰이 사진의 위치정보까지 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변호인단이 가장 기본적인 포렌식 작업을 걸쳐 검찰이 제출한 해당 사진들의 위치정보를 파악한 결과 해당 사진들은 모두 중국 연길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검찰은 유씨가 북한에 머물렀다는 2012년 1월 23일경에 유씨가 중국에서 통화한 통화내역이 나왔음에도 이 역시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유씨가 2012년 1월22일~23일 사이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은 “2012년 1월 23일 밤부터 1월 25일 오전 사이에는 유씨의 통화기록 자체가 나오지 않으니 이때 북한에 있었다”며 공소장변경을 신청했다. ‘아니면 말고’ 식 공소장변경이 이뤄진 셈이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변경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된 증거에 따른 검찰의 KO패였다.
■항소심에서조차 가짜 서류 만들어 증거조작했나
검찰은 유씨에 대한 1심 무죄판결이 난 이후 항소를 제기했고, 또다시 유씨의 국가보안법위반죄의 증거로 <출입경기록>을 추가로 제출했다.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에는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오전 10시24분쯤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50여분 뒤인 11시16분쯤 다시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갔고, 이후 계속 북한에 머물다 다음달인 6월 10일 15시17분에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는 유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을 오간 기록이 담긴 것으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씨의 유죄를 이끌어내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려고 북한에 간 적은 있지만 2006년 5월27일 이후 북한에 간 적이 없다는 유씨 주장과는 배치되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중국 공안국에서 공식적으로 발급한 증거라면 이는 공신력있는 확정적 증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 문건을 발급해준 것으로 문서에 기록돼 있는 중국 화룡시 공안국은 “우리는 발급해줄 권한도 없고, 발급해주지도 않았다. 가짜다”라고 부인했다. 문서는 명백히 존재하고, 검찰은 유죄의 증거로 법정에서 제출했는데 정작 발급해준 것으로 기록돼 있는 중국 담당기관이 발급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또 중국 현지에서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에 찍혀있는 공증도장 역시 화룡시 공증처에서 사용하는 공증도장이 아니라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제출의 출입경기록은 중국의 공증기관에서 공증을 받은 것이 아님에도 마치 공증을 받아 공신력이 있는 것처럼 허위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누군가가 있지도 않는 서류를 조작해 사법부를 속여 유죄를 받아내려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류를 조작한 ‘성명불상자’는 누구인가
변호인단은 7일 경찰청에 ‘성명불상자’를 국가보안법상 무고와 날조죄로 고소했다. 도대체 누가 허위 <출입경기록>을 만들어 검찰에 넘겼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인단은 앞서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에 석명을 요청하고, 해당 문건을 제출한 사람이 누군지를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검찰은 “중국 공안당국과 공식적인 외교라인을 통해 확인해보겠다”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결국 검찰이 추가수사를 통해 확보한 자료가 아니라 ‘누군가’가 검찰에 해당 문건을 줬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유우성씨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유씨는 몇 차례 숨을 고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06년 5월 27일 이후 북한에 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중국에서 북한을 왔다 갔다고 한 기록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송으로 1년여의 세월을 허비했다고 했다. 그는 동생을 한국에 데려와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유씨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2차례에 걸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간첩도 아니고, 종북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자기 자그만한 꿈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유씨에 대한 항소심 다음 공판은 오는 17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2월 14일
중국대사관은 검찰이 유우성씨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과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가 위조됐다고 회신합니다.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위조된 공문서’ 증거로 제출한 검찰, 재판부 속이려 했나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간첩혐의 1심 무죄’ 유우성씨 “기쁘고도 억울…8개월 독방 악몽 생생”
당장 검찰은 해당 문건이 중국 기관이 정식 발급한 것이라며 위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검 “간첩사건, 中 공안당국 확인 후 증거 제출…위조 없었다”
그러다 2월 18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증거조작 의혹 관련해 진상조사를 지시합니다.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 지휘 아래 중앙지검에 진상조사팀이 구성됐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선양(瀋陽)총영사관이 정식으로 발급받은 문서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발급사실확인서 1건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머잖아 위조 의혹은 더 짙어집니다.
2월 21일 조백상 선양 총영사는 국회 외통위 출석해 위조 의혹이 제기된 문서 2건은 국정원 소속인 이인철 교민담당 영사가 입수한 것으로 중국 공안당국을 통해 입수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검찰 진상조사팀은 조 총영사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13시간 조사를 벌입니다.
2월 24일 검찰 진상조사팀튼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에 검찰과 변호인이 제출한 서류 8건에 대한 동일성 여부 감정을 요청합니다.
이어 2월 28일 검찰은 이인철 영사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다음날까지 21시간 조사를 하고 국정원 협조자인 조선족 김모씨를 소환조사합니다. 대검 DFC는 진상팀에 변호인과 검찰이 제출한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문서의 관인이 서로 다르다고 회신합니다.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 파장]‘의혹의 핵’ 선양 총영사관…국정원 파견 직원들 관여했나
2014년 3월 3일 검찰 진상조사팀은 법무부 통해 중국에 정식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2014년 3월 5일
국정원 협조자 김씨가 3차 소환조사받고 귀가한 뒤 서울 영등포의 한 호텔에서 흉기로 자살 기도를 합니다. 호텔 벽에는 '국정원, 국조원'이라고 쓴 혈서를 남겼습니다. 이 혈서는 누군가 지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간첩조작 연관’ 자살시도 중국동포, 모텔 벽에 피로 ‘국정원’ 적어
[전문]자살 시도 ‘간첩 사건’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가 남긴 유서
3월 7일 검찰 진상조사팀은 진상조사 절차를 정식 수사로 전환합니다.
3월 10일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압수수색을 실시합니다. 이어 같은달 11일 검찰은 유씨 출입경기록 관련 항소심 재판에 전산 전문가인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3월 12일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협조자 김씨를 체포하고 전직 중국 공무원 임모씨를 소환합니다. 피고인 유우성씨는 진상팀에 출석했지만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3월13일 법원은 검찰의 이상진 고려대 교수 증인신청을 기각합니다. 같은날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소속 이인철 영사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습니다.
3월15일 진상조사팀은 협조자 김씨를 구속하고 국정원 비밀요원 김모 과장(일명 '김사장') 체포했습니다.
3월19일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권모 과장 소환조사하고 국정원 김 과장(김사장)을 구속합니다. 이어 22일 국정원 대공수사팀 이모 팀장을 소환조사합니다.
국정원 권 과장은 이날 검찰 3차 소환조사 후 귀가해 자살기도를 합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국정원 권 과장, 차 안서 자살기도
권씨가 위중한 상태로 빠지면서 '윗선 수사'도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간첩 증거위조’ 연루 국정원 과장 자살 기도… ‘윗선’ 수사 차질
3월27일 검찰은 문제가 된 문서 3건을 포함해 항소심 재판부 제출한 증거 20건에 대한 신청을 철회합니다. 하지만 검찰은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는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검찰, ‘유우성 간첩’ 문서 3건 증거철회…공소유지는 강행
3월28일 법원은 유씨 간첩사건 항소심 추가심리를 결정합니다.
3월 31일 검찰 진상조사팀은 국정원 김 과장과 협조자 김씨 2명을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모해증거위조·모해위조증거사용·허위공문서작성·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합니다.
그리고 4월 검찰은 간첩 증거조작과 관련한 수사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것 아닌가….”
[단독]‘간첩 증거조작’ 수사결과 발표 앞둔 검찰 뒤숭숭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둔 검찰의 표정은 무겁다. 검찰은 지난해 이미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이후 큰 파고에 휩쓸렸다. 그때가 최악인 줄 알았던 검사들은 지금의 위기에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언론을 통해 증거조작에 대한 정황이 제기될 때까지만 해도 ‘설마설마’했던 검사들은 지난달 31일 국정원 과장 김모씨와 협력자 김모씨가 모해증거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되며 범죄사실이 드러나자 경악하고 있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국정원이 정보원들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조를 지시하고 중국 정부까지 농락한 것 아니냐”며 “믿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지난달 7일 “협력자 김씨가 건넨 문건을 진본으로 믿었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지방의 한 검사는 “국정원이 밝힌 입장도 허위공문서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수사를 지휘해야 하는데 대공수사에서는 공안부와 국정원이 너무 ‘한몸’처럼 움직였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의 한 중견 검사는 “지난해에는 그래도 하기 힘든 사건을 수사하다 ‘정당한’ 곤욕을 치른다는 정도의 자존감은 남았다”며 “이번에는 공범 취급을 받고 있다. 검찰 앞에 ‘조작’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차장급 검사는 “과거 특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불쾌했는데 이 사건은 차라리 특검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며 “어떤 수사결과가 나오든 여진이 남을 것이고 검찰 내부에서 두고두고 상처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공안부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하다. 공안수사를 오래 해온 한 검사는 “솔직히 내가 했던 과거 사건에서도 혹시나 나도 모르는 문제가 불거지는 게 아닐까 겁난다”며 “국가기관끼리 서로 의심하면 어떻게 함께 수사를 하나. 대공수사 시스템을 바꿔야겠지만 전체를 매도하는 여론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수사검사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고 그랬을 리 없다”는 온정주의가 강하다. 외부에선 검찰총장 책임론까지 불거지는 것과 큰 온도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사검사가 문서 취득 경로에 대해 법정에서 수차례 거짓말을 한 것이 확인됐는데도 “감찰이면 몰라도 형사처벌까지 가겠느냐”는 것이다. 잘못된 수사의 책임을 지느니 차라리 ‘국정원에 속은 바보’를 자처하는 셈이다. 검찰이 검사들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다보니, 국정원 윗선 조사도 더 나갈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2014.4.14 검찰 수사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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