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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후배에게서 온 고언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leon@kyunghyang.com



지난 주 편집국의 한 후배로부터 페이퍼에 담긴 의견을 전해 받았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고교 시절 비키니 사진을 게재한 데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전날 밤 온라인에는 ‘대단한…박근혜 비키니 사진 화제’라는 제하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습니다.


후배는 “이런 기사를 무감하게 다루는 우리가 미성년자의 노출에 대해 성상품화라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요”라면서 “여성 정치인의 성에 대해 절제되지 않은 방식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성희롱 논란으로 한나라당에서 퇴출된 강용석 의원의 발언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모든 기사는 ‘경향신문’의 제호를 달고 세상에 공급된다”면서 “신문의 제작 스태프로서, 경향을 아끼는 독자로서 이번 기사는 굉장히 불편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온라인 주요 화면에서 그 기사를 내리고, 후배에게 “애정과 배려가 담겨 있는 조언 감사하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니터링 부탁한다”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후배로부터 답장이 오기를,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님 최고 ^^”라고 하더군요. 괜히 가슴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놓고 민주노동당과 경향신문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 민감한 이슈는 경향 온라인에서 촉발시켰습니다. 디지털뉴스팀에서는 지난 7일 밤 처음으로 ‘민노당 일각, 경향신문 3대세습 비판 사설에 반발 절독 선언’이란 기사를 올려 경향신문 사설에 대한 민노당 일부의 정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후 이정희 대표의 입장이 나오고, 이를 반박하고 재반박하는 여러 논객들의 글이 쏟아졌던 것이 저간의 사정입니다. 많은 논객들의 글이 오갔지만, 대부분 자신의 논지를 펼치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경향 온라인은 모든 글들을 독자에게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http://khross.khan.kr/11

 이런저런 글을 모아 전하는 과정에서는 일체의 감정과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언론사와 맞부닥치는 사안에서 얼굴을 붉히고, 짜깁기하고, 온갖 파편을 자기 입맛대로 각색하는 언론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향신문 사설을 비판하는 쪽의 글은 더 크게, 더 자세하게 싣도록 했습니다. 필자의 사진 한 장을 고를 때도, ‘당사자가 봤을 때 가장 흡족할 만한 사진’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정희 대표의 첫 사진은 언성을 높이는 듯한 표정이어서 보다 차분해 보이는 대정부질문 당시의 사진으로 교체했습니다.

어느 쪽 가릴 것 없이 모든 주장은 <오피니언X>란에 일자일구도 가감이 없이 가지런히 묶어 놓았습니다.지금이라도 들어오시면 논쟁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진행상황을 한 눈에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모 대학 정치학과 강의에서는 이번 이슈를 토론 주제의 하나로 잡고, <오피니언X>에 정리해놓은 글들을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실제 그렇다면, 온라인 편집자로서 더 없는 보람입니다.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공론은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낙태, 안락사, 사형제 등 수없이 민감한 사회적 아젠다들이 공론 과정을 거쳐 정리했거나 도출 중입니다.


오늘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하는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이었나’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립니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역시 정리해 내놓겠습니다. 언젠가 논란이 마무리될 때 서로에게 비판에 감사하고, 귀담아 들어줘 감사하다는 인사가 오고갔으면 좋겠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편집 원칙은 ‘책임있는 당국자에게 확인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균형있고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1970년 이른바 ‘서피코 사건’은 이 신문이 그러한 원칙에 얼마나 충직했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신문사 버냄(David Burnham) 기자는 은퇴한 경찰 감사반 출신 서피코(Frank Serpico)로부터 경찰의 부패상에 대해 놀랄 만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버냄은 특종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기사는 신문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뉴욕 타임스> 편집국 간부들은 버냄 기자에게 정보를 준 서피코가 이미 현직에서 은퇴해 ‘책임있는 당국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사를 싣지 않았습니다. 순진하다고 할까요, 우직하다고 할까요. 경찰의 부패상은 후에 모두 사실로 드러났고, <뉴욕 타임스>는 다른 신문사 기자들에 섞여 당국자의 발표를 받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얘기는 1973년 ‘형사 서피코’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서피코 역은 알 파치노가 맡았습니다.
  


교과서적인 원칙 때문에 <뉴욕 타임스>는 몇 차례 특종을 놓쳤습니다. 그러나 공정보도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몇 번의 특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반대급부로 돌아왔습니다. 독자로부터 이 신문만은 믿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경향신문>도 그리됐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떠들썩한 귀향’ 기사는 이 땅에 과연 정의가 살아 있는지, 법이 살아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운동장에 엎드려 큰 절을 하고, ‘각하배 골프대회’를 열고, 현직 국회의원이 줄줄이 앉아 있는 장면을 보며 혹시 월요일 아침 독자들의 심기가 불편하지는 않았을지 저어됩니다. 



(사진은 대구공고 총동문회 동영상 - 유튜브 화면캡처)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게 어디 한 둘인가요.

국감에선 피감기관장들이 의원들의 질의에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가만히 있지 않겠다” “장관 오래하지 않을 것이다”며 빈정대고 협박하고 짜증을 냈다는군요. 거여(巨與)의 빽을 믿는 것이겠지만, 통상 국감을 앞두고 범정부 차원에서 야당의 공격에 강력히 대응한다는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요 뉴스 역시 국감장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대검(불법사찰 부실수사 문제)과 한국은행(금리 문제), KBS(시청료 인상 문제) 등이 핫 이슈가 몰려 있는 곳입니다.


중국에선 공산당 17기 5중전회(1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데요.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에 올라서면서 중국 지도부의 5세대 대권을 예약하게 될 지가 최대 관심입니다. 시부주석이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오르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 이어 2인자 자리를 굳히게 되고 2012년 권력교체를 2년여 앞둔 시점에서 사실상 차기 대권을 예약하게 됩니다.


이번 주는 아마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계속 지면을 달구게 될 것 같습니다. 의혹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요. 상당 부분이 내부 친족이나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온 핵심 정보이기 때문에 태광측으로선 별 탈 없이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대목은 연말 종편 최종 선정을 앞두고 태광그룹과 친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신문사들간 공격 강도가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공정보도는 그렇게 어려운 것인 모양입니다.


화요일부터 비 소식이 예보돼 있는데요. 비가 그치면 가을 속으로 더 한발짝 들어가 있겠죠.
가수 이용이 부른 10월의 마지막 밤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