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 세상 엿보기

'나는 가수다' 패러디 종결자 '나는 장관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대한 논란과 비아냥이 끊이지 않습니다. 7명의 가수 중 한 명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표방한 이 프로그램이 지난 20일 방영분에서 첫 탈락자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것 때문인데요. MBC 제작진은 여러가지 설명을 덧붙이며 재도전의 정당성을 설명하려 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는 주변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일반인들은 갖지 못하는 '재도전'의 기회를 너무 쉽게 얻는 것을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아버지를 잘 둔 덕분에', '단지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재도전의 기회를 얻곤 했던 거지요. 혹은 '줄을 잘 섰기' 때문에 재도전의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분노와 비난과 패러디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패러디한 <나는 선배다> 입니다.


MBC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입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무한도전>을 너무 의식한 듯 결국 <무한 재도전>이라는 패러디를 낳게 됩니다. 탈락자가 재도전하고 또 다른 탈락자가 재도전하고, 또 다른 탈락자가 재도전을 하는... 결국 40년 동안 재재재재재도전의 반복.


그러나, 무수히 쏟아지는 패러디 중에서도 최고 대박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22일 아침 트위터 아이디 madpen10 님이 올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던 겁니다.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재도전'의 기회를 갖는 이들을 말이죠. <회전문 인사>라는 말로도 잘 이해되지 않던 게 이번에 확인됐습니다. 줄을 잘 섰다는 이유로, 충성을 바친다는 이유로, 그 어떤 잘못에도 불구하고, '장관'에 임명되는, 그게 안되면 또 다른 자리를 제공해가며 무한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현 정권의 한심스런 작태를 봐 왔던 겁니다. 그래서 정권의 눈치를 보게 됐다는 방송국마저, 자신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무한 재도전의 기회를 주게 되는 거죠. 적어도 그건 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시청자들은 말이죠.


그날 투표를 한 청중 500명은, 인사청문회 때 장관 후보자들의 무수한 잘못을 지적한 국회의원보다 못하게 됐습니다. 청와대의 "그래도 임명하겠다"는 억지와 '나는 가수다' 제작진의 변명은 어쩐지 닮아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 정도 쯤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일반 서민들은 '재도전'의 기회조차 없어서 하루 하루 목숨 걸고 살고 있는 요즘입니다.


                                                     네티즌들사이에 <나는 가수다> 패러디 중 인기 있는,
                                                   <1박2일> 나영석 PD가 <나는 가수다>의 연출자였다면.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경향신문 22일자를 통해 나는 가수다가 왜 만들어지게 됐는지, 대한민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정권이 바뀜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줬습니다.

[문화와 세상]‘서바이벌 예능’ 우울한 시대의 초상

새로운 인기 경향은 2003년 <스펀지>로 대표되는 이른바 ‘에듀테인먼트’였다. 이 경향은 꽤나 인기를 얻어 식품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비타민>, 우리말과 방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말 달리자> 등 여러 방송국의 예능 포맷 개발로 이어졌다. 이런 인기는 ‘○○합시다’ 투의 공익적 캠페인과는 달리, 사소한 것도 생각하고 따지고 정보를 얻고 공부하는 태도가 좋아 보인다는 당시 대중의 태도 변화와 맞물려 있었다. 이 흐름이 시작된 2003년은 토론과 공부를 중시하던 참여정부의 첫해였고, <스펀지>가 탄생한 KBS에는 정연주 사장이 취임해 조직을 뒤집어엎어 놓은 해이기도 했다. <중략>

작년과 올해에 이어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다시 옮겨진 셈이다. 이 유행은, 남을 누르고 살아남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우울한 초상이다. 경쟁에서 패한 자와 살아남은 자가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지만 그렇다고 냉혹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살벌한 경쟁은 단기적 위기상황의 소산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의 변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는 무리한 자극성은, 이런 자극적 긴장감 없이는 노래에조차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의 상시적 불안감이 낳은 것이다.





 
맞습니다. 우리는 항상 불안감 속에 떨고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긴장과 공포를 조성하고, 일부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2008년 이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바이벌' 입니다. '안전한' 누군가는, '재도전'이 무한으로 가능한 누군가는 지금 상황이 그저 즐거울지도 모릅니다. KBS의 대표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 틈만 나면 떠들 듯 "나만 아니면 돼"니까요.


이용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