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어주는 향이] 안방을 찾아온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우리는 어떤 TV프로그램을 보고, 어떤 얘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경향신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지기 ‘향이’가 인터넷 빅데이터를 토대로 측정한 ‘관심도’ 기준으로 어떤 TV프로그램들이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정리해드립니다.
지난주(9월22일~28일) 인터넷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TV프로그램은 새로 시작한 드라마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SBS)’입니다.
보통 새로 시작한 드라마는 일단 높은 관심을 받았다가 1, 2회에서 일종의 ‘테스트’를 거친 후 진짜 성적이 나오더군요. 그간 많은 드라마들이 주인공, 설정 등에 대한 흥미 때문에 관심도 1위를 기록했다가 급격히 순위가 떨어진 이유입니다.
출처: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 홈페이지
그.래.서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도 이번 성적은 ‘개업발’로 보고 지나치려했으나, 이 드라마는 그래도 누리꾼들의 관심을 어느정도 지속적으로 집중시킬 역량이 있을 것 같다는 - 순전히 저의 ‘감’입니다 - 판단 아래 좀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엔 몇가지 비극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중 손꼽히는 게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죽인 이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견줄만큼의 광기어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루기엔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사실관계가 모두, 낱낱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죠.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 캡쳐
사도세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한중록)’이었을까요, 아니면 ‘무재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애민하는 마음조차 깊어 성군의 자질이 충분했던 이’(아들 정조의 추도문)이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아직도 사도세자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지요. 드라마 제작진은 후자의 모습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죠. ‘만약 사도세자가 미치광이가 아니라 성군의 자질이 충분했던 청년이었다면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지?’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좇는 스토리입니다.
팩션 사극, 퓨전 사극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가 되었지요.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조선왕조실록의 단 몇줄을 토대로 만들어진 ‘대장금’이 있겠고요, 이후에는 조금 더 ‘대범한’ 상상력과 액션.판타지.미스터리 등 장르적 속성까지 가미된 여러 사극이 만들어졌습니다. ‘쾌도 홍길동’ ‘일지매’ ‘바람의 화원’ ‘동이’…. 최근 가장 성공한 드라마로는 ‘성균관스캔들’(원작은 정은궐씨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이 작품 역시 정은궐씨의 소설이 원작이군요), ‘뿌리깊은 나무’(이정명씨의 동명소설이 원작이고 한석규씨가 주연이었죠), ‘기황후’ 등이 생각나네요.
(잠깐, 제가 좋아했던 ‘정도전’은 저는 정통사극의 범주에 넣고 싶네요. 제작진이 정통사극을 표방하기도 했고요)
'기황후' 캡쳐
팩션+퓨전 사극이 인기를 얻으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바로 ‘역사왜곡’ 문제입니다. 특히 ‘기황후’는 ‘역사왜곡 드라마’라는 소리를 안들을 수가 없었죠. '고려 백성들을 악랄하게 괴롭힌 천하의 나쁜X'이라는 기황후를, 단지 고려인 출신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외유내강의 여장부로 미화한 그 드라마가 저도 사실 좀 찜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지원씨 팬인지라 ‘본방사수’했답니다. 그러고보니 기황후가 시작할 때마다 올라오던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라는 자막이 저의 그 찜찜함을 완화해주었네요. 이를 두고 기황후 제작진이 역사왜곡 ‘우회돌파’를 택했다는 말도 나왔죠.
하지만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에는 이런 식의 ‘우회돌파’는 없는 것 같습니다. 논란의 인물에 대해 논란을 일으킬만한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전개하면서 극을 진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실제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네요. 아래는 소아청소년정신과전문의 서천석 박사가 올린 트윗글입니다.
여러분은 ‘비밀의 문’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한석규씨와 이제훈씨, 김유정 양의 연기력이면 이야기 몰입에는 걱정없을 것 같고요, 드라마가 다루는 인간의 컴플렉스 그리고 권력의 속성 등을 들여다보며 나름대로 얻어가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역사의 일면'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겠지요.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당대의 정치실상과 백성의 모습’을 잘 전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드라마를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정도전’이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붕당정치에 휘둘리라고 고려 무너뜨리고 ‘조선’ 만든 거 아니었잖아요?! 재상이 왕을 견제하며, 백성 누구나 재상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된 조선이라는 나라, ‘민본정치’하라고 만든 거였잖아요?! 어쩌다 나중에 그 지경이 되는지 씁쓸합니다.
'비밀의 문 - 의궤살인사건' 캡쳐
‘비밀의 문’과 함께 검색된 키워드는 이선(사도세자, 이제훈), 서지담(가상의 인물, 김유정), 혜경궁 홍씨(박은빈) 등입니다. 주로 등장인물이지요. 그런데 인기 키워드 중 하나인 ‘맹의’는 '인물'이 아닌 일종의 '계약서'입니다. 영조가 노론과 손을 잡고 왕(경종)을 시해하고 왕위를 뺏기로 했음을 보여주는 문서지요. 맹의를 좇는 자, 맹의를 없애려는 자 등의 구도를 생각하면서 이 드라마를 봐야 재미있겠네요.
자 이제, 다른 TV프로그램 얘기로 넘어갈게요. 이번주 순위를 보다가 ‘무한도전’이 20계단이나 상승해 깜짝 놀랐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고 궁금해하는 찰나, 저는 알게되었습니다. 지난주 무한도전은 결방이었음을.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분들이 무한도전을 어떻게든 보고싶어서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헤매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후덜덜’한 규모의 누리꾼들이 무한도전을 검색하거나, 과거방송 다시보기를 하셨길래, 결방인데 순위가 상승하는 결과가 나오는 건가요.
‘왔다, 장보리’ 역시 결방이었지만 2위를 지켰습니다. ‘왔다! 장보리’ 제작진에게는 사필귀정의 결말로 그간의 스토리를 '인내한' 시청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고, 이 연사, 외치는 바입니다.
'주먹이 운다-용쟁호투' 캡쳐
‘주먹이 운다-용쟁호투(XTM)’는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요, 한 주 사이에 무려 27계단 상승했네요.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해보려는 위험한 도전, 항상 매력적이죠.
하지만 지난주에 유독 순위가 상승한 것은 무한도전의 결방과 더불어 개그콘서트의 부진, 그리고 ‘제국의 아이돌’ 래퍼 김태헌씨가 ‘격투가’로서 참가한 것이 이유일까요. 앞으로는 걸그룹 ‘타히티’의 지수와 아리가 매니저로 나온다고 하고요, ‘쌍칼’ 박준규씨의 아들도 출연한다고 하네요. 계속되는 합류 소식은 어쨌든 ‘주먹이 운다-용쟁호투’가 ‘뜨는’ 예능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느 누리꾼은 이 프로그램의 평점란에 이런 글을 남겼더군요. ‘남자라면 빠져들수 밖에 없는 치명적 매력의 프로그램. 나도 한 번 나가서 지더라도 싸워보고 싶다’고요.
여기까지, 향이의 '내맘대로 TV읽기'였고요, 지난주 인터넷 관심도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빅데이터를 토대로 지수화한 인터넷관심도 순위와 시청률 순위를 비교해본 결과입니다.
향이가 분석해드리는 ‘TV 인터넷 관심도’란 현재 방영 중인 국내 142개 채널, 860여개 프로그램 중 누리꾼들의 인터넷 검색, 방송사 홈페이지 방문, 미리보기 및 다시보기 이용정보 등 (주간기준) 20억건의 빅데이터를 지표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지표는 TV프로그램에 관한 데이터를 '만든' 누리꾼을 '5만명'이라고 했을 때 그중 몇명이 각각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 TV인터넷 관심도를 더 자세히 보고 싶으시다면 ☞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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