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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 경향신문 ‘10대가 아프다’취재팀이 독자를 만났습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취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지면에 쓰지 못한 뒷얘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습니다. 이날 오갔던 취재팀과 독자의 솔직토크 전문을 정리했습니다.  



경향신문 조호연 사회·기획 에디터

‘10대가 아프다’취재팀 류인하·박효재·곽희양·이혜인·배문규·이재덕 기자

이윤조 서울시 청소년상담센터 팀장, 김지훈(가명, 고등학교 3학년)

신정아(진명여고 2학년)

(진행: 경향신문 인터랙티브팀 이인숙 기자) 

이인숙 기자: 2월에 편집국장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참석자들에게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물으니 ‘10대가 아프다’취재팀이라는 답이 많았다. 마침 ‘10대가 아프다’기획을 담은 책이 나왔는데 출간을 기념해서 기자들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10대가 아프다’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던 얘기지만 누구도 모르는 10대의 얘기를 전해줬다. 취재팀에게 들으니 취재과정에서 만난 학생 수가 200명이 넘고 삼겹살, 빵과 커피 사주느라 수십만원을 넘게 썼다고 한다. 서울 목동·대치동 학원가를 돌아다니고 신촌, 마포의 노래방을 찾아다니는 등 발품을 팔아서 기사를 썼는데 그만큼 생생했던 것 같다. 오늘 그 얘기를 들어보려고 한다. 

먼저 취재팀을 소개하겠다. 류인하 기자가 전체 기획을 총괄했던 팀장 역할을 맡았다. 박효재 기자가 주로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곽희양 기자는 상담 교사와 학생들 만나는 일을 함께 했다. 이혜인 기자는 학교를 찾아가고 학원가를 많이 다녔다. 배문규 기자는 이혜인 기자와 함께 학교, 학원가를 다녔고 일진 친구들도 만났다. 이재덕 기자는 주로 ‘일진’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교육 전문가로는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이윤조 팀장님이 와주셨다. 학생들도 왔다. 신정아 학생과 김지훈 학생이다. 이 탐사보도를 기획하고 최종 총괄한 조호연 에디터로부터 어떻게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됐는지 얘기를 들어보겠다. 

조호연 에디터: 10대의 얘기는 다들 알고 있는 주제인데 또 다들 모르고 있는 주제인 것 같다. ‘10대가 아프다’기획을 시작할 때 학교폭력이 초점이 아니었다. 기획의 ‘마중물’은 지방 대도시 한 곳에서 중학생이 투신 자살을 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크게 보도가 안됐다. 그러다 경향신문에 한 분이 기고를 했다. ‘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그걸 보고 영감을 느꼈다. 필자에게 전화를 해 확인해보고 나서 그 영감이 더 맞아들어갔다. 

기획을 시작했고 팀을 꾸렸다. 취재팀이 취재 초기에 일주일 정도 취재한 것을 A4로 50장 정도 보고서로 올렸다. 그날 푹 빠져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제 집으로 가져가서 고교 1학년(작년 중학교 3학년)인 딸에게 읽어보라고 하니까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취재팀과 상의해서 이번 ‘10대가 아프다’의 주제는 10대의 목소리로 보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어른들의 눈으로 계몽하듯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번 많이 나왔고 저희도 많이 시도했다.  

8회 기획을 했는데 대안을 별도로 기획하지 않았다. 해결책, 대안이라는 것이 바로 10대 목소리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했고 기사제목에 많이 반영했다. 10대들이 현실과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실으면서 어떻게 하면 해결될 거라고 대안을 시사하는 부분도 많이 지면에 할애했다. 

첫회가 나가고 상당한 반향이 있었다. 첫회에 대한 반응이 성공을 가늠하는 역할을 하는데 열화와 같은 반응이 있었다. 취재팀이 두 사람 빼고 모두 수습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아주 능수능란하게 잘 취재했다. 취재가 훌륭해서 버릴 게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취재팀에 감사드린다. 또 하나 시리즈를 진행하는 동안 10곳이 넘는 출판사로부터 출간제의가 왔다. ‘아, 눈길을 끌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의 특성상 매일매일 새 상품을 내야 한다. 이전에 만났던 취재원과 계속 인연을 이어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기자들이 지금도 그때 만났던 취재원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자기 진로도 상의하고 다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빠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10대가 아프다’를 보도하고 상도 많이 탔지만 아직도 10대는 여전이 아프다는 부분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오늘 자리에서 해법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인숙 기자: 참가신청을 받아보니 부모님과 교육청·상담업무 등 청소년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많이 신청하셨다. 10대 학생이나 대학생도 많았다. 다들 10대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오셨으니까 자유롭게 얘기하면 좋겠다. 

일단 어떤 것들이 궁금하신지 사전에 질문을 받았다. 가장 많은 질문이 취재 과정을 묻는 것이었다. ‘10대들이 어른과 대화할 때 방어적인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화를 끌어냈나’ ‘왕따 취재는 어떻게 했나’ 등. 

‘아이팟’으로 상징되는 사건을 취재했던 이혜인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겨보려고 한다. 취재 과정이 스스로도 큰 경험이었다고 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들었다. 

이혜인 기자: 작년 9월에 입사해서 1년도 안 된 기자다. 기획취재 자체가 처음이었다. 아이팟 학생 취재는 처음에 하고 싶지 않았다. 기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고 굉장히 개인적인 일을 파헤쳐야 하는 거지 않나. 

‘그 아이와 관련된 것을 최대한 자세하게 취재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일단 그 학생이 살던 곳으로 가서 학생이 살던 동네 주민, 학교 주변 문방구 아저씨 등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었다. 사실 제대로 얘기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을 얘기하길 꺼렸다. 

어떻게 보면 그 취재는 그 학생의 삶 속으로 제가 들어간 것이었다. 11월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데 정원이 예쁘게 갖춰진 학교에 이제는 더 이상 그 학생이 없고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게 심정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다. 

주변사람들은 그 학생이 ‘힘들다는 얘기를 별로 안 했다’ ‘그럴 줄 몰랐다’ ‘예의바른 학생이었다’고들 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그 마음의 변화를)알아챌 수 없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소식지에도 취재하고 많이 울었다고 글을 쓴 적 있다. 

그 학교 담벼락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적혀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구가 가슴을 때렸다. ‘누군가 아무리 힘들어도 오래 자세히 지켜봐야지 알겠구나….’ 하지만 이제 그 학생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인숙 기자: 학교도 많이 찾아갔다고 들었다. 학교에서는 (그 학생의 죽음에 대해) 어떤 분위기였나. 

이혜인 기자아무도 말씀을 안 하시려고 했다. 쫓겨나고 들어가고, 쫓겨나고 다시 들어가고 그러기를 3번 정도 반복한 뒤에 겨우 취재할 수 있었다.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데 학교에서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입단속부터 시킨다. 아이들이 “선생님들이 기자들하고 얘기하지 말랬어요”라고 하더라. 학생들은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고. 이상한 소문만 듣고 추측성 발언만 했다. 

어른들이 충격적인 큰 사건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경위를 설명해주고 그래야하는데 무조건 언론에 얘기하지 말라고만 하는 모습들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면 온통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글귀들이 보였다. ‘지금 자는 순간 니 인생도 잠든다(?)’같은 문구들이었다. 게시판에는 방학 때 공부 계획표가 쫙 붙어있더라. 저 다닐 때도 그런 게 참 많았는데 아직도 교실에는 공부하라고 말이 뒤덮여있구나 싶었다. 

이인숙 기자: 그 학생을 다룬 기사가 시리즈의 첫 기사였다. 그 기사가 나간 뒤에 그 학생이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기사에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류인하 기자가 부모님과의 이야기를 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류인하 기자: 지금 그 기사를 검색하면 아마 안 나올 거다. 책에도 보니까 간략하게만 언급돼 있고 들어가지 않았더라. 지방의 중2 학생이 자살을 했는데, A4용지 2장짜리 유서 마지막에 곰인형과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는 것이 기획의 시발점이었다. 

그 기사를 최대한 지역도 안나오게, 아이 이름도 특정되지 않게 했지만 부모는 알지 않겠나. 부모는 그 유서를 천번, 만번 읽었을텐데. 최대한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다보니 유서 내용도 기사에 들어갔다. 

보도가 나간 후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학생의 삼촌이었는데, ‘내 조카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함부로 내도 되느냐’고 항의하셨다. ‘10대 전체, 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해달라. 개인을 특정하지 않았으니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부모님의 분노는 잘 사그러들지 않았다. 소송을 걸겠다고도 이야기하고 중재위 이야기도 나왔다. 

저희도 많이 갈등했다. 칼럼으로도 이미 나왔고, 지역지에도 나와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보도됐는데 신문을 모두 수거할 수도 없고. 그러다 조호연 에디터와 상의하라고 책임을 미뤄버렸다. 조 에디터가 1달 가까이 고생하신 것으로 안다. 

그 이후에 대구에서 학생 한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모든 언론에 그 학생의 자살 유서와 실명에 가까운 정보가 나오기 시작하고 유서 전문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그런 선정적인 보도가 나오면서 부모 등 주변 사람들도 우리의 취지가 선정적 보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납득하셨다. 그 이후에 일이 잘 해결됐다.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잘 지낼 거라 생각한다. 기사 마지막회까지 우리는 그 아이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이인숙 기자:10대 아프다’기사 중 학교 폭력이나 왕따문제를 다룬 부분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진’에 대한 취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10대는 친구가 중요하고 또래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는데 방어적인 10대들이 취재팀에 어떻게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는지 들어보겠다. 이재덕 기자가 일진 친구들을 만난 것이 한 지구대에서 발견한 트렌스젠더 폭행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들었다. 



이재덕 기자: 당시 수습기자여서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었다. 새벽 1시에 이태원 지구대를 취재하는데, 여자인데 남자같이 생긴 분이 왔고, 학생 2명이 있었다. ‘이건 어떤 조합이지?’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남산에 명동에서 하얏트 호텔로 올라가는 소월길이 있다. 자정이 넘어가면 그곳에서 트렌스젠더들이 매춘을 한다고 한다. 이걸 10대들이 알더라고요. 12시가 넘으면 10대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소월길로 간다. 트렌스젠더들에게 다가가서 시비도 걸고, 때리기도 하고 돈도 뺏고. 그래서 그날 잡혀 온 거였다. 트렌스젠더들은 10대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 연신내 쪽에서 알게된 ‘일진’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이것이 하나의 ‘놀이문화’라고 했다. 트렌스젠더들은 경찰에 신고하기 꺼려할 것 같고, 누군가 때리고 싶고 놀고 싶으니 왕따 아이들을 학교에서 괴롭히듯이 트랜스젠더를 폭행한 것이다. 

처음에는 보고를 해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이 풀려날 떄까지 기다렸다. 근처 케밥집 데리고 들어가 “배고팠지?” 하면서 케밥을 사주고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이야기 안해줄 줄 알았다. 좋은 일도 아니고, 기자라 밝혔으니. 그런데 이상하게 의외로 순순히 이야기하더라. 이 친구들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계기가 돼서 그 친구들 중에 한명이 김지훈 친구를 소개시켜줬다. 이 친구가 그때 잘 나가는 '일진'이었는데...그 당시에는 공부하려는 의지도 있었고, 나쁜 친구 같지 않았다. 같이 밥 먹으면 다음에는 '삼겹살 사줄게 나와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말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이 담배를 많이 핀다. 근처에 같이 가서 같이 담배도 피면서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할 때는 은어도 많이 썼다. 정색하고 얘기하면 싫어할 것 같아서, 애들이 잘 쓰는 은어들 있잖아요. 이야기하다보니 일단 제가 어려서 이 친구들의 선생님이나 어른들과 다르게 느꼈던 것 같다. 또 '일진'들이 왜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는지,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너희들에 대해 알고 싶다, 솔직하게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애들이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친구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자기가 그래도 어깨에 힘 좀 주고 살아야 하는 '일진'인데, 집안 형편 같은 안 좋은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친구들끼리도 서로 이야기하면서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거짓말도 하고 그러더라. 

사람이 서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잘 되잖아요. 돈도 좀 많이 썼습니다.ㅎㅎ 만약 만난 게 한 두 번이었으면 이야기가 잘 안 나왔을텐데, 기사를 쓰기 위해서 같은 친구만 6번 정도 만났다. 

삼겹살 같이 먹으면 10만원씩 나오고 그러잖아요. 한번은 한명을 불렀더니 친구들을 한 9명 데리고 왔다. 명동에 몰려왔는데 어디 좋은 곳에 가기도 힘들고 돈을 많이 쓸 수도 없어서 맥도날드 가서 햄버거 사주고 친해졌다. 취재가 끝난 뒤에도 이 친구들과 여러 번 만났다. 

어떻게 애들과 쉽게 친해졌는지 묻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애들에게 다가가서 알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었기 떄문인 것 같다. 단순히 한 두 번 이 아니고 여러 번 가서 계속 얘기하고 친해지고...처음에는 어떻게든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의지로 갔었지만, 여러 번 만나면서 이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 조언하는 게 아니라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 

이인숙 기자: 이재덕 기자의 '파트너'였던 김지훈 학생에게도 물어보겠다. 기자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해보자고 했을 때 껄끄럽지는 않았는지. 이재덕 기자와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김지훈 : 처음에 경찰서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통해서 기자님에게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다. 왜 연락했느냐고 하니 밥사주겠다, 만나자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까 (이재덕 기자가) 저희를 이해해주려는 부분 많았다. 다른 어른들은 저희를 안 좋은 시선으로만 보는데, 저희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절박하게 느껴졌다. 나이도 얼마 차이 안나니까(친근하기도 했고요)...그래서 인터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자님과 이야기하는데 의구심이 들었다. 기자는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왜 우리같은 사람이랑 얘기하기를 원할까. 우리는 할 줄 아는 거는 노는 거밖에 없는데...하지만 계속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동질감 같은 것이 있었다. '이 사람이 날 정말 이해하는구나.' 그래서 인터뷰했다.

이인숙 기자: 광윤 학생의 말에 큰 함의가 있는 것 같다. '자기를 이해하려 했다','자기의 맘을 들어주려 했다'는 말이 맘에 와 닿는다. 이런 애기를 꺼내서 미안하지만 광윤 학생이 (인터뷰를 할) 당시 가출을 했었다고 들었다. 그러다 이후 기사가 나간 즈음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예쁜 결정'을 한 것 같다. 어떻게 마음이 바뀌었는지.

김지훈: 지금은 그러지 않는데 중학교 때 방황하다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그랬던 이유가...주변에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친구들과는 말이 통했다. 친구들과 오래 있고 싶고 그래서 학교를 빠지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집도 나가고 다른 애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제가 중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어쩌다보니 그 지역의 명문학교로 가게 됐다. 선생님들이 반응이 (내게) 탐탁지 않았다. 늘 '왜 공부 안하냐'. '너같은 애들이 커서 어떻게 되는지 아냐'는 얘기만 해서 반항감 때문에 집을 나간 것 같다.

이인숙 기자: 다시 학교로 돌아갔는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이재덕 기자와 만나면서 그렇게 됐나. 

김지훈: 학교로 다시 돌아간 건...집을 나가서 길을 걷다가 아빠를 만났다.(웃음) 그때 제가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라고 때릴 줄 알았는데 때리지 않았다. 아빠가 옛날에 경찰을 해서 덩치도 크고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말을 취조식으로 하다보니 늘 아빠와 할말이 없었는다. 

그런데 그날 아빠를 보니까 너무 작아지신 거다. '어, 왜 내가 아빠보다 더 커졌지?' 그런 생각도 하고 '내가 아빠한테 잘못한 게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학교에 다시 가려면 계획을 짜서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신 게 처음이었다. '아빠가 나를 이해하려 하는구나'하고 느꼈다. (아빠와 내가) 세대 차이도 나니 이해 못하는 것도 많고 제가 살아온 방식과 아빠가 살아온 방식이 다를 텐데. (그렇게 학교로 돌아갔다)

그 뒤에 재덕이형에게 전화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재덕형밖에 없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하니까 재덕이형이 '밥은 먹었냐'고 했다. 그때 '재덕이형 참 좋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재덕이 형이 좋은 게 입에 발린 소리 안하는 거였다. '집에 가라, 그러다 탈선할 거다' 이런 이야기를 안했다. 그저 '배고프지 않냐'면서 밥부터 먹자고 한다. 

제 생각에는 기자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만나기가 쪽팔렸다. 옷도 못 갈아입고 밥도 못먹고 꼬질꼬질해서 어떻게 만나냐. 

저는 계속 공부가 하고 싶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부러웠다. 그래서 재덕이 형에게 물어봤다. 저희는 살 수 있는 게 책 밖에 없고, 그래서 책을 사서 재덕이 형에게 갔는데 그렇게 보니 그냥 동네 형 같더라고요. 저는 기자여서 정말 공부 잘하는 줄 알았느데 잘 모르시더라. 그러다가 갑자기 기억났다고 하면서 가르쳐주기도 하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도 많이 해줬다. 형이 직업 있으니 많은 시간을 같이 못 보냈지만 인터뷰하면서 재덕이 형이 많이 신경써줬고 취재 후에도 밥도 사주고 관계가 좋았다.

이인숙 기자: 이재덕 기자에 대한 훈훈한 미담이군요.ㅎㅎ 책을 읽어보니까 일진 9명의 인터뷰가 한꺼번에 실린 부분이 나온다. 친구를 괴롭히거나 때릴 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는데 이유가 전부 분명하지 않다. '그냥 때리고 싶다'. '손맛이 있어서 끊을 수 없다'. '말 안듣는 게 눈에 거슬린다'. '기죽고 싶지 않아서' 등이었다. 10대에게 폭력이 너무 익숙하고 일상화돼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런 10대 심리는 어떤 건가요. 서울시 청소년상담센터 이윤조 팀장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윤조 팀장:  상담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답이 '그냥요'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원인 찾으려 한다. 

저희가 보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실제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청소년의 고민 60%를 차지하는 1, 2위가 학업에 대한 고민이다. 

학부모님들이 우리 애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안 되서 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먹을 휘두르면 아이들이 껌뻑 죽고 아이들 사이에서 소위 '짱'을 먹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주먹은 자발적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잘하는 게 그냥 '그냥'인 거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폭력에 심취돼 그렇게 한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겠다 싶었다. 

얼마 전에도 센터 근처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났고, 오늘도 우울증 관련해서 상담을 하고 왔다. 상담을 하면서 제가 학교 폭력에 폭력을 당한 느낌이었다. 

경향신문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제게 왔을 때 느낀 것이 보통 기자들은 단일 사건만 취재하고 그만인 경우가 많은데 이 취재팀은 아니었다. 낮이고 밤이고 와서 취재하려고 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저를 움직였던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들의 고민 하나하나를 멘토처럼 이해하려 한다는 생각을 하면(좋을 것 같다). 

이인숙 기자: 10대 친구들이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10대가 아프다'기사에서도 학업 스트레스를 볼 수 있는 단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시험이 되면 짐승이 된다', '시험기간 앞두고 서로 노트필기를 안 보여준다' '사소하게 싸움을 하거나 친구가 공부하지 못하도록 책, 노트를 훔쳐간다' 등. 

기사에 등장하는 고은우(가명)라는 학생은 24시가 학교, 학원, 과외가 전부였다. 중학교 2학년인데 고등학교 수학과 언어영역 미리 배우고 토플도 배우는 등 선행학습을 많이 했다. 

기자들이 학원가를 다니면서 취재했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다. 배문규 기자가 학원가에 많이 갔다고 하는데 목동 학원가의 분위기와 학생들의 얘기를 전해달라.

배문규 기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만나라' '밤늦게까지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를 찾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목동의 학원가를 찾았다. 저녁 9시부터 기다리기 시작해 수업이 끝나는 10시까지 기다렸다. 10시가 되자 학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부모님들이 태워가거나 하는데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었다. 

가장 많이 했던 질문 중 하나가 '꿈이 뭐냐'. '뭐하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냐'는 거였다. 그런데 저는 꿈이 뭐냐고 묻는데 하나같이 학생들이 말하는 꿈이 '자고 싶어요', '자는 게 꿈이에요'라고 하는 거였다.

저는 속으로 '아, 기사가 이런 식으로 나갈 수 없는데'생각하면서 계속 '너희들이 되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다. 저는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상황에서 검사, 변호사 등 '사'자 가 들어간 직업 같은 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이게 한국 교육의 현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기획기사 취재가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부모님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지금 자고 싶은 게 꿈이 (된 상황은) 아닌지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갔을 때 만난 친구도 생각한다. 학원가를 돌아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던킨도너츠에 들어갔다. 기사 마감시간은 다 돼 가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만나야 했다. 

그런데 던킨 도너츠 안에서 마침 공부 잘하게 생긴 친구가 문제지를 풀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니 마침 저희가 찾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생활을 그대로 받아적어서 나간 것이 고은우라는 학생의 24시였다. 그런데 그 학생은 자신의 상황에 너무도 순응적이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체념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이인숙 기자: 오늘 김지훈 학생 외에도 신정아 학생이 와주셨다. 정아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다. 정아학생은 공부 스트레스가 어떤지, 무엇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나.   

신정아: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되서 느낀 건 고3에 대한 압박감이었다. 이미 고3이 된 거 같다. 고1 때 고3언니들 수능시험 보면 디데이를 설정해서 이제 수능이 며칠 남았다고 얘기하고 그러는데(그런 기분이다.). 

지금도 시험(중간고사)이 13일 남았다. 보통 시험이 있기 2주 전쯤 되면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할 때 폐인돼서 온다. 눈빛이 퀭하고 오자마자 조회 시간 끝나면 아침 먹고 졸다가 수업이 시작된다. (제가 있는 학교는)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편이다. 학습 분위기가 좋아서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한다. 점심 시간에도 D-13 써놓은 교실에서 조용히 공부한다. 

아까 꿈 얘기를 하셨는데 꿈을 정확히 아는 애가 없다. 제가 공부를 하고 있지만 뭐를 위해서 하는지 모르겠고 일단 대학을 가기 위해서 하는 건데 그럼 만약 대학에 가면 꿈을 바꿔야 하는 건지(의문이 든다)...엄마랑 얘기해보면 결론도 안나고 결론은 '어쨌든 공부해라'였다. 

친구들도 다 막연하다. 일단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고. 뭘하고 싶다는 건 막연하다. 학교도 진로보다 학업성취도평가나 중간고사, 기말 고사 점수에 중점을 두고(고른다). 시험 기간에는 다들 예민해져서 친구들끼리 가끔 사소한 일로 기분이 나빠질 때가 있다. 시험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이인숙 기자: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신정아 : 저는 컴퓨터를 좋아해서 새벽까지 하거나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다. 저희가 스트레스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노래방이 있지만 그것도 노래방을 좋아하는 아이들 얘기다. 외국은 스포츠가 활성화돼 있다는데 우리는 체육시간에 줄넘기, 뜀틀하는 정도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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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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