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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5명의 ‘함께 달리기’ 감동, 그리고 어떤 우려

어제 SNS에서 화제가 된 사진 한 장.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는 친구를 위해 5명의 초등학생이 함께 손을 잡고 달린 사진이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드는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들었습니다. '아!' 일단 감탄사부터 나왔지요. 이 감탄사는 "대견하다", "아이들은 역시 다르다", 그리고 "부끄럽다" 등등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었습니다.

해당 사진은 지난 5일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초등학생한테도 배울 것이 있더군요”라는 제목의 글에 함께 올라온 사진이었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게시자 ‘테라바다’는 한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사진을 소개하며 “6학년 학생 5명이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사진에는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학생 1명과 다른 학생 4명이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오늘의 유머' 화면 갈무리.

기사읽기 >> 초등학생 5명, 운동회 달리기 중 손잡고 나란히···알고보니 꼴찌 위해


글쓴이는 “키가 작은 학생은 또래에 비해 작고 뚱뚱해 5년 동안 늘 달리기에서 꼴찌를 했다”며 “마지막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친구들은 꼴찌를 하는 친구를 위해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출발 신호 이후 30m를 달려나갔지만 다시 꼴찌로 달리던 친구에게 다가갔고 이어 4명의 친구들은 꼴찌를 하고 있던 친구 손을 잡고 나란히 달려 결승선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꼴찌로 달리던 학생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게시자는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수많은 누리꾼들이 공감했습니다. 왠지 모를 감동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꼴찌만 하던 아이가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어른이 되면서 경쟁에 치여 타인을 내치기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라디오를 듣다가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이 사진에서 받은 감동은 100% 리얼이지만, "저 아이들이 자라 달리기 등수가 수행평가에 반영된다면 어떨까"라는 누군가의 반응이었습니다. (라디오 진행자의 생각이 아니고, 이런 반응도 있더라고 소개하더군요)


어떤 순수함에 대한 우려.


사실 이 기사는 누군가의 선행을 소개하는 '미담 기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읽는 이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훈훈한 기사'라고 할 수 있겠죠. SNS를 들여다보면 최근에는 미담 기사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습니다. 세상이 너무 팍팍하고, 사회지도층들이 자기 잇속만 챙기고 부정의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승승장구를 하는 뉴스를 보다보니 정말 '사람들의 사람다운 이야기'에 목이 말랐다고 할까요. (저도 마찬가지)


그래서일까요. 지난 7월 손수레를 밀고 가다 정차된 아우디를 긁은 손주와 할머니에게 "통행에 방해가 돼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차 주인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습니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에서 531만여명에게 도달, 22만여명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이 기사를 보며 누리꾼들은 "간만에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라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기사읽기 >>할머니 손수레가 아우디 긁었다…“차주는 대뜸”

그런데, 여기서 또 마음에 걸린 댓글 하나. "아우디가 홍보하려고 한 건 아니겠죠?"


사진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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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수함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는 이렇습니다. "간만에 보는 참 훈훈한 소식",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그런데 참 훈훈한 내용이지만, 이건 진실일까요?" 혹은 "이 훈훈함은 조금만 벗어나도 훈훈하지 않아요"


한국사회를 '불신사회'라고 하고, '경쟁위주 사회'라고도 하죠.  그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행위 그 자체를 그 순간에 있었던 일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 말이죠. 이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그런 사례들을 있어왔고, 그래서 학습된 결과이기도 하죠. 어떤 사람들의 상식적인 행동이 '훈훈하게 비춰지는'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행위 자체에도 어떤 '우려'가 함께 동반된다는 점, 모두 한국사회의 씁쓸한 일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훈훈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스스로도 감동받았다가도 '이건 상식이잖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소식에 그만한 호응을 보내는 건 단순한 건 아니지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여러 면을 돌아볼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다시, 초등학생들의 달리기로 돌아가서 저 아이들에게 "손을 놓고 혼자 달려라"라고, "그게 세상 사는 법이야"라고 말하진 말아주세요. 아이들에게 가열찬(혹은 현실을 반영한) 독설은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겠죠. 혹은 실제로 저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우리를 다그치는 '미친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이 사진을 보며 어떤 '우려'까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잘못이 더 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