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수의 브레인'으로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변신이 놀랍습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돕겠다는 파격적 지지선언을 하더니, '보수인 윤여준이 왜 문재인을 지지하는가'를 설득력 있게 얘기한 찬조연설로 유투브 조회수 60만을 훌쩍 넘기며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요즘은 깊이를 자랑하는 팟캐스트 방송이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윤 전 장관이 한때 경향신문에 몸담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까마득한 후배인 경향신문 노조위원장 권재현 기자가 까마득한 선배 윤 전 장관을 불쑥 찾아갔습니다. 경향신문 노보 1면을 장식한 내용을 소개해드립니다.
윤여준 전 장관이 경향신문과 했던 인터뷰 때 찍은 사진을 모아봤습니다. /경향신문 DB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74·사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의 인기가 뜨겁다. 방송 3회만에 정기구독자 4만명을 모았고 누적방문횟수는 11만건을 넘어섰다. <나는 꼼수다>가 대박을 터뜨린 뒤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던 팟캐스트 방송이 <팟캐스트 윤여준>을 계기로 중흥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전 장관은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 때 정계에 입문, YS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장관을 거쳐 옛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이르기까지 줄곧 보수정당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해온 인사다. 탁월한 정치감각과 정세분석 능력을 갖춘 지략가인 동시에 YS에게 직언을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핵심 참모 중 하나로 전형적인 책사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친정 <경향신문>은 1998년 한화와 분리된 뒤 독립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적 약자와 진보 개혁 세력을 대변하는 진보언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 역정과 그의 후배들이 만드는 경향신문은 점점 서로 멀어진 셈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등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동안에도 그는 한나라당의 선거기획과 관련한 주요 직책을 맡으며 진보개혁 진영과 줄곧 대척점에 섰다.
그런 그가 진보개혁 진영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1년 <청춘 콘서트> 기획을 통해 안철수 교수의 ‘정치멘토’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공개지지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명쾌한 논리와 군더더기 없는 화법으로 시청자를 휘어잡은 그의 지지연설은 지상파TV는 물론 각종 인터넷과 SNS 등을 타고 전파되며 젊은 유권자들에게 ‘윤여준’이라는 정치인을 새롭게 각인시켰다. 그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함께 일약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후배들이 만드는 경향신문과 반대 방향으로만 달리던 경향신문 출신 선배가 어느 순간 후배들에게 성큼 다가선 형국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나이를 무색케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풍부한 국정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날카로운 상황판단 능력,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파고드는 합리성이 돋보이는 그의 팟캐스트를 매주 들으면서 문득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방송으로만 듣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경향신문 후배 아무개입니다. 찾아뵈어도 괜찮을지요?” 승낙을 얻었다.
지난 6일 팟캐스트 방송 <팟캐스트 윤여준>을 하려 마주앉은 윤 전 장관과 김홍신 전 국회의원의 모습. /제작진 제공
6일 저녁 방송이 제작되는 홍대 인근의 아담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방송 녹음 시작 5분 전이었다. 특별 손님으로 초대된 김홍신 전 의원이 와 있었다. 제작진은 방송을 위한 최종 점검을 하느라 분주했다. 윤 전 장관과는 방송 후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로 하고 일단 녹음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PD가 신호를 보내자 예의 차분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윤 전 장관의 인사말과 함께 녹음이 시작됐다. 1시간 넘도록 그와 김 전 의원은 <교착상태에 빠진 여·야 정부조직 협상>을 주제로 대담을 펼쳤다. 노련한 두 사람은 한 번의 NG도 없이 방송을 마쳤다.
녹음실을 나오는 윤 전 장관에게 방송 원고는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연필로 주제별 핵심 단어만 기록한 A4용지를 꺼내보이며 “별도의 원고는 없다”고 말했다. 1시간 넘는 시간동안 원고도 없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처럼 매끄럽게 풀어간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터다. 제작진도 “그는 타고난 방송인”이라고 귀띔했다.
제작진은 모두 2명이다. 라디오 방송사에서 일하는 PD와 다양한 지상파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거친 베테랑 작가가 젊음과 패기로 똘똘 뭉쳤다. 돈 한푼 받지 않고 재능기부 형태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4회부터는 30대 초반인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가 합류했다.
연출을 맡은 PD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윤 전 장관의 깊이에 빠져들고 있다”며 “70대 보수인사와 30대 진보인사간 대담 형식의 소통을 통해 젊은 사람들이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제대로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없이 보람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 주 수요일 저녁 방송 녹음 후 평가를 겸해 간단한 뒷풀이 자리를 갖는다. 이날 뒷풀이엔 김 전 의원도 동석했다.
경향신문 얘기가 나왔다. 윤 전 장관은 “경향신문 잘 만든다. 무엇보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시각을 담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고 밝혔다. (기분좋은 칭찬이네요 홍홍...정말 이렇게 되려고 노력해야겠죠?)
내친 김에 윤 전 장관이 근무할 당시 경향신문과 요즘 경향신문을 비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당시에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있었다. 다만, 소유구조 형태상 사주의 입김이 강했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싶은 말 다 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갔다. 소설가 출신인 김홍신 전 의원의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재담은 끊일 줄 몰랐고 생맥주 한 잔에도 얼굴이 발개진 윤 전 장관은 간간이 김 전 의원의 유머에 박수를 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홍대 앞 거리에서도 윤 전 장관의 인기는 입증됐다. 그를 알아본 팬들은 자신의 연락처가 담긴 쪽지를 건넸고 사인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생맥주를 앞에 놓고 젊은 제작진과 웃음꽃을 피우는 윤 전 장관을 보면서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읽을 수 있었다. 1977년 경향신문사를 떠난 지 36년만이다.
까마득한 선배인 윤 전 장관은 먼 길을 돌고돌아 이제는 뉴미디어인 팟캐스트 방송 진행자로서 경향신문 후배들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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