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주파티'에 모든 기자들이 한 자리에... 경향신문 편집국의 연말 전통이랍니다
2011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 낮으로 밤으로 검은 날에도 빨간 날에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기자들 사이로 바삐 돌아가는 이 편집국에도 어김없이 한 해의 끝은 찾아왔습니다.
한 해가 끝나는 12월 말일, 신문사 편집국에는 '냉주파티'라는 전통이 있습니다. 냉주(冷酒), 즉 차가운 술 한 잔을 나누어 마시며 편집국장 이하 모든 기자들이 편집국에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조촐한 자리를 갖는 것이죠.
청와대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공공기관, 단체, 회사 및 세상 모든 일이 돌아가는 현장을 두루 돌아다녀야 하는 기자들이 한반도가 좁아라 외근을 하다보면 정작 본사 편집국 내에서는 거의 마주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냉주파티는 그 동안 잘 못 본 얼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세밑은 모두가 일을 빨리 마치고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그래서 신문도 마감이 앞당겨집니다. 그만큼 근무가 좀 더 정신없어지기도 했는데, 이 정신없는 편집국 한가운데의 편집부 뒤에 벌써 오후 3시쯤부터 냉주파티를 위한 상이 차려지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모든 기자들이 조금 일찍 서둘러 5시30분에 모든 면이 전송되고, 편집국 냉주파티를 시작합니다. 우선 정동식 전무와 이대근 편집국장의 한 해를 마감하는 엄숙한 축사가 이어지네요. "한 해의 어려움을 견뎌준 모두를 위해 회사는 심기일전하겠다"는 전무 축사와 "내년에는 최고 신문을 달성하여 최후 승리를 한다"는 편집국장 축사가 이어집니다.
냉주파티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단연 수습기자 공연입니다.
가을쯤 경향신문에 처음 들어온 수습기자들은 기자의 세계에 입문하면 일명 '사슴앓이'라 불리우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슴앓이'는 '사츠마와리(경찰기자를 말하는 은어로 일본말)'를 우리 말로 순화한 표현입니다.
처음 사회부에 배속되어 하루종일 직속 선배기자인 '1진'기자의 지시에 따라 취재현장을 누비고, 새벽과 늦은 밤시간엔 배치된 라인의 경찰서와 병원, 소방서 등을 돌아다니며 각종 사건 사고와 기사거리를 챙겨 정해진 시간마다 보고를 해야 하는 생활이 계속됩니다.
수습생활 3개월여, 당연히 할 말도 많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생기고 눈물도 많이 흘렸을 시기에 하게 되는 수습 공연. 그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가 웃음 속에 배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1진'이 가장 수습기자들을 '괴롭혔는지'를 편집국 전체에 폭로하며 집중 공략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경향의 미래를 짊어질 이번 해 수습기자들은 과연 무엇을 준비했을까요?
고단한 수습생활을 정의하기 위해 '애정남' 이종희 기자(맨 위)와 '애정녀' 이혜인 기자(중간)가 등장했습니다.
"선배중에 가장 잘생긴 사람은 누구일까요?"
애정남"이거 애매합니다~ 정말 애매합니다잉~ 일단 그 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잘 생긴 겁니다잉~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잉~ 1진이랑 단 둘이만 있으면 그 일진이 제일 잘 생긴 겁니다잉~"
이런이런~ 수습들에게 "여기서 누가 제일 잘생겼냐?" 물어보신 적 있나봐요. 수습들이 그 때 누구를 찍었는지 더 궁금한데요?
"1진이 전화를 안받습니다. 아침보고를 해야하는데..."
애정녀 "애매합니다잉~ 이럴때는 그냥 보고합니다잉~ 코고는 소리가 나도 신경 안씁니다잉~ 1진은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잉~ 그렇다고 나중에 사회부 회식에서 '선배가 자느라고 보고도 못받더라구요 ㅋㅋ' 이러면 안됩니다잉~"
애정남/애정녀와 비상대책위원회에 빗대어 3개월 수습 생활 이야기를 이 자리에 풀어내는데 많은 정성을 기울인 김여란 기자는 "보편적으로 웃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실 우리만 알고 우리만 웃길만한 내용은 많이 뺐다"라고 하는데요.
연말 냉주파티에 선보이는 수습 연극에는 바로 윗 선배인 1진기자들을 비롯해 바이스(사건팀 부팀장), 캡(사건팀장)을 넘어 사회부장과 편집부장에서 사장에 이르기까지 성역없는 패러디와 기용이 무제한 가능합니다.
세 번째 사진에 나와있는 '비상대책위원회'처럼요. 평소에 못 했던 이야기들, 가슴에 담고 있는 말들이 코믹과 함께 어우러져 나오는 이런 연극으로 간접적 공감과 소통의 장이 열리기도 하죠.
장기자랑의 끝에는 고단한 수습생활을 위로하는 포상금이 편집국장 이하 각 간부들에게서 전달됩니다. 포상금을 받아든 49기 간사 곽희양 기자의 얼굴에 고단한 '사슴앓이' 기간 중에도 모처럼 환한 웃음을 찾았습니다.
신입 기자들에게 연말은 이 포상금으로 실로 오랜만에 편안한 동기 송년회를 보내는 날이기도 합니다. 경향의 새 얼굴 49기들의 이야기는 다음에 한 번 제대로 들어보기로 해요~
냉주파티와 함께 '전태일보도상' 시상식도 있었습니다. 전태일보도상은 경향신문의 전태일 열사와 당시 경향신문의 보도를 기념하며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에서 수여하는 상입니다.
올해 처음 시행되며 권기정·김형규·박은하 기자가 '희망버스' 보도로, 이영경·류인하 기자가 '은마아파트 청소노동자 사망' 기사로 전태일보도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한 번 물어봤습니다.
상패보다 상금이 더 좋은 포즈를 취해준 박은하 기자의 말을 한 번 들어볼까요?
"희망버스를 쫓아 부산까지 내려가서 봉래3거리에 있었는데, 그만 늦은 시간에 피곤해서 길거리에서 2시간이나 노숙을 해버린 거예요. 3시에서 5시까지 잠들어 있다가 너무나 추워서 깨어나서, 때마침 그때 시작된 기자회견도 취재했어요. 그래서 기사를 정리해 보고할때 '길거리에서 2시간을 잤더니 죽을 것 같았다'라고 쓴다는게 '2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상쾌했다'라고 그만 바뀌어버린 거예요. 이 기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기자 정신이 살아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노숙일 듯 합니다. 박은하 기자, 그래도 부산에서 일어났을 때는 죽을것 같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상쾌하지요? 다음번에는 더 보람차고 의미있는 노숙 또 부탁할게요~
류인하 기자의 '경찰과의 한 판' 이야기도 한 번 들어봅니다.
"은마아파트 청소노동자 사망을 계기로 실제 사법처리가 되기로 한 건 전기계장 한 명 뿐이었어요. 그것도 과실로만. 그런데 담당 경찰이 '상상적 경합'과 같은 법률용어를 써가면서 말하는 거예요. 즉 인과 관계가 없으니 아무도 기소할 수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사람은 죽었는데 도대체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냐. 그러니까 계속 이런 저런 법률용어를 써가면서 이야기를 해대는데, 사실은 나도 법대를 나왔거든요. 그래서 나도 법률용어로 맞받아치면서, 그 자리에서 30분간 '법률용어 배틀'이 벌어져버린 거예요. 결국 그 경찰이 '법대 나오셨습니까?' 하고 묻더라구요."
30분 법률용어 설전의 보람은 충분히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러게 상대를 보고 싸움을 거셨어야지~~ 활약이 대단한 류인하 기자의 2012년도 기대합니다.
한 해가 정말 정신없이,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지나간 것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요. 내년을 마감할 때에는 여기 편집국 안에도, 그리고 저 편집국 바깥 세상도 모두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상 편집부 김명일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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