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긋지긋한 세상… 나도 탈출하고 싶다
패러디는 위기를 뜻한다. 풍자는 역설적으로 답답한 세상을 반영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사회는 경직됐다. 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작아진다. 긴장감은, 누군가는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하지만, 도를 넘어선 긴장감은 스트레스로 사람들을 억압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를 향한 봇물 터진 패러디는 그 위기와 답답함을 반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G20부터였을까. 아니, 사실은 그 이전이었을 게다. 현 정권이 시작됐을 때부터였다. 사람들이 긴장하기 시작한 것은.
무언가를 할 때 먼저 머릿 속으로 한 번 검열을 해 보기 시작한 것은.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은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갑갑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촛불이 시작되기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하려 할 때 고민하거나 검열하지 않았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대통령을 욕했다. 고민하지 않았다. 욕해도 됐다. 유행어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욕하지 못한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에서 대통령을 욕한 이는, 그게 경찰이 되려 하는 사람들을 향한 강의여서 더욱 문제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검찰은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통령을 욕하지 못한다. 대신 ‘쥐’를 말한다. 사실 그 마저도 이제 께림칙하다. 지금은 ‘국가원수모독죄’라는 법률이 사라졌다는 것을,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과거 독재시절의 망령이 살아나는데는 불과 3년이 채 필요하지 않았다. G20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던 이들은 ‘배후 수사’를 당하고 있다. 자칫 ‘쥐 간첩단’이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지난 7일 조총련 간첩단이 27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해당 대법원 재판부의 주심은 무려 신영철 대법관이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대법관이다)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곰의 탈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한 말레이곰은 6살. 사건 발생 초기 ‘사람을 해칠 우려’에 대해서 걱정하던 네티즌들은 곧장 그 곰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트위터에는, 처음에는 등산객들에 대한 걱정의 트윗이 많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곰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트윗이 많아졌다.
말레이곰 힘내라.
아, 가련한 웅생이여
탈출한 이름이 꼬마라면서요?
이후, 곰, ‘꼬마’가 탈출한 이유가 알려지면서 곰에 대한 걱정은 사랑과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트위터에는 ‘곰 봇’이 출현했다. @Malayanus_bear는 실시간(?)으로 곰의 처지와 상황을 중계했다.
곰 트위터가 전해 준 ‘곰’체는 곧 트위터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했곰, 그렇곰, 아니곰.
곰이 관심을 받는 것은, 단지 그가 탈출한 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곰은 곰이지만, 곰은 우리 사회를 그 내부로 투사하고 있다. 철창에 갇혀 있는, 사육 당하는, 자유가 없는, 취직도 하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연애도 하지 못하는, 6살짜리 꼬마 곰.
곰은 탈출했다. 탈출은 긴장과 갑갑과 어둠으로 가득찬,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진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청계산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곰 '꼬마'는 그 욕망을 대신해서 실현시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곰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건강을 걱정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문득 외치고 싶어졌다.
나도 탈출하고 싶곰!!!
[손현철의 ‘다큐포엠’] 사육곰, 철창 속의 슬픈 V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