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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사찰 묻히지 않을것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leon@kyunghyang.com


경향신문 옴부즈만을 맡고 있는 박주현 변호사는 요즘 국내 사정을
“이슈가 너무 많은데 아무 것도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개탄했습니다. 주목해야 될 수없이 많은 이슈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G20에 묻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묻혀 땡처리되고 있다는거죠. 
그는 ‘대포폰’을 그 중의 한 사례로 지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포폰’으로 상징되는 민간인 불법사찰은 정말 아무런 이슈가 되지 않은 채 폐수처럼 흘러갈까요.



청와대와 한나라당, 검찰은 요지부동입니다. 특검도, 국정조사도, 재수사도, 아무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죠. 여권이 내세우는 ‘절대 불가’의 논리는 “이미 검찰 수사에서 다 밝혀진 사항이고, 재수사할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는 주고 받기요, 뺄셈 덧셈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작은 걸 주고 더 큰 것을 얻어내는 기술이 능할수록 명 총무 소리를 듣는거죠. 정부·여당은 지금 야당의 예산 국회 보이콧으로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제1야당 대표가 ‘대포폰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농성에까지 들어간 마당에,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그까짓 재수사 하나 못내줄 것 아닌거죠. 더구나 다 밝혀진 내용이라 뭐 새로운 것이 나올게 없다면서요.


바로 여기에 키 포인트가 있습니다. 대포폰 재수사는 내년 예산안을 볼모로 잡히고서도 선뜻 내주지 못할 만큼 절체절명의 뇌관일 공산이 큽니다. 
대포폰 재수사로 막힌 정국을 뚫어보려는 출구 전략은 청와대가 완강히 막아서고 있습니다. 한나라당내에서도 이런 청와대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이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른바 ‘몸통’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재수사나 국정조사를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청와대가 넘어오지 않는다”는 뒷이야기도 들립니다.   

사찰의 몸통은 누구누구가 거론되고 있을까요. 

1차 검찰 수사에선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총 지휘자로 정리돼 감옥에 갔습니다. 일개 5급 공무원이 정·관·재계 주요 인사들의 사찰을 총지휘했다니, 소도 웃을 일입니다. 





아마 재수사든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재개될 경우 그 윗선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지원관실을 최초 설계하고, 공식·비공식 보고를 받은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박영준 전 국무조정실 차장(현 지식경제부 2차관)입니다. 
최근엔 그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근무했던 국정원 출신 이창화 행정관이 국정원장에, 여야 의원들에, 그 부인들까지 뒤를 캐고 다녔다는 폭로가 나온 바 있습니다. 그 행정관은 왜 그런 무모한 일을 했을까요.

이런 수사는 여론이 향방을 좌우합니다. 

만약 재수사가 진행될 경우 박영준 선에서 사찰의 배후가 종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역대 모든 정권이 그랬듯이, 정권과 관련된 비리 의혹은 첫째는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티고, 둘째는 여론에 떠밀려 결국 수사가 시작되고, 셋째는 민심이 오케이할 때까지는 멈추지 못한다는 공식을 밟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 수사는 대통령의 형인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까지 도달해야 끝날 것입니다. 

사찰에 연루된 핵심 인사들이 모두 ‘영포라인’이고, 사찰을 당한 대상은 반SD(이상득) 세력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박영준은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입니다.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민간인 불법사찰과 대포폰의 몸통이 이상득 의원으로 확인될 경우 이 정권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급격한 레임덕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모를 재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불법 사찰 문제에 쏠리고, 한 명씩 교도소에 수감되는 모습이 중계방송되는 사태는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래서, 청와대는 재수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향신문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하는 박영환 기자는 “재수사 요구를 받아들인 뒤 당할 타격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입을 타격보다 훨씬 크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과연 청와대의 버티기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답은 ‘네버(Never)’ 입니다.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독자 여러분은 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뷰(기시감·旣視感)같은 것을 느끼고 있지 않으신가요. 과거 정권에도 1차 어영부영 부실수사를 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재수사에 들어간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대표적 재수사 사례는 12·12 및 5·18사건입니다.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지만,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YS(김영삼)는 재수사를 지시해 가담자 전원을 처벌했습니다. 
1998년 경성그룹 로비는 기업쪽 사람들만 기소하고 얼렁뚱땅 수사를 종결했다가 뒤늦게 의혹이 제기되면서 결국 검찰은 재수사에 들어가 당시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 등을 구속했습니다.   

검찰의 재수사는 정권이 버티고 버티다 결국 악화된 여론을 이기지 못해 이뤄진 특징이 있습니다. 지금 이 정권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박주현 변호사는 “너무 중요한 이슈가 묻히고 있다”고 했지만, 그럴 일도,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