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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형님의 말로'

현 정부 임기가 1년 2개월 남았는데요. 통상 정권의 임기말 그림은 집권여당의 기둥과 서까래가 우지끈 무너지고, 권력의 단 맛을 누렸던 측근들이 하나둘 감옥에 들어가는 것으로 압축됩니다. 한나라당의 내부 붕괴는 요즘 보시는바대로이고요. 여기선 검찰발 임기말 현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불거진 것만 보더라도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4급 보좌관(46)이 SLS그룹 등 업체로부터 구명로비 대가로 7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 보좌관은 15년 동안 이상득 의원을 모셔온 측근 중의 측근입니다. 그보다 먼저 이 의원을 11년간 보좌했던 박영준 전 국무조정실 차장(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수사선상에 올라 있습니다. 이들에 관한 의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건데요. 올 여름부터 SLS그룹 이국철 회장은 기자회견이다, 비망록 폭로다 해서 금품로비 사실을 다 까발렸었죠. 당시 검찰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이 회장의 주장을 깎아내렸습니다.
 

이상득 의원


그랬던 검찰이 똑같은 사안, 똑같은 내용을 이제 칼을 들이대는 것을 보니 임기말이 왔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수사의 관전 포인트는 검찰의 칼끝이 이상득 의원에게까지 도달할 것이냐는 점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해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검찰 수사가 성공했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선에서, 수사결과가 설득력이 있다 없다에 달려 있습니다. 일개 보좌관을 보고 회사를 살려달라며 현금 수억원을 싸짊어지고 갔다 줬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믿을 수 없습니다. 결혼식 축의금도 혼주나 신랑·신부를 보고 내지, 결혼식장 접수대에 앉은 사람 얼굴을 보고 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몸통’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구나 구속된 보좌관은 받은 돈을 의원실 여직원 2명의 계좌를 거쳐 송금받는 '돈세탁'을 거쳤다고 합니다. 의원실 모두가 검은 돈을 주무르는 동안 의원 혼자만 몰랐다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역대 정권에서 검찰은 임기말 때마다 정권 최고 실세에 대한 수사를 해왔습니다. 김영삼 정권에선 아들 현철, 김대중 정권에서도 아들 홍업·홍걸 비리에 손댔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선 형님 건평씨에게 칼을 들이댔죠. 이들의 비리는 정권 초부터 시작된 것이고, 주변이 온통 악취로 진동했지만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땐 먼 산을 바라보는 게 검찰의 속성입니다. 죽은 권력만 물어뜯는다고 해서 검찰을 흔히 하이에나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이 정권 4년 동안 인사 전횡, 민간인사찰 배후 등 온갖 소문에 연루되며 ‘영포대군’ ‘만사형통’ ‘형님 예산’ 등 신조어를 양산해냈습니다. 그 형님을 향해 검찰 수사가 정조준된 모습이니 권력무상이 다시 한번 실감납니다.
‘MB 레임덕’‘형님 레임덕’이 함께 달려온다고나 할까요.


검찰이 주변부터 잡아넣고 핵심을 향해 접근하는 것은 상용 수법입니다. 이를테면 보좌관이 걸린 여러 개의 혐의 중 다른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신 형님과 관련된 것을 불어라고 족쳐대는 압박수사를 예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좌관의 형제와 처가, 사돈의 팔촌까지 뒤집어 탈탈 털면 입을 안 열 재간이 없죠.
이런 부분에 있어서 검찰은 프로 중의 프로입니다. 검찰에 소환되는 날, 아마도 형님은 “사실무근” “정치검찰의 표적수사” “모든 것은 법정에서 가리겠다”며 억울함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 구치소로 가는 호송차 안에서 비로소 ‘검찰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신재민 전 차관 내외


사실 10년만에 정권을 잡은 보수정권 주변이 흥청망청했던 흔적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 여의도와 강남의 고급 식당과 룸살롱에선 밤마다 흥청거린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나온게 아닙니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날 청와대 행정관, 국회의장 비서, 공성진 전의원 비서, 최구식·정두언 의원 비서 등 5명이 광화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강남의 룸살롱으로 자리를 옮겨 고급 양주 '발렌타인 17년'을 마시고 새벽에 흩어졌다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이들의 ‘일과’ 중의 하나가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신재민 전 차관과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재직 중 현금을 고정월급처럼 받고 업자가 준 신용카드를 펑펑 쓰고, 고급 승용차에 골프채 선물을 아무렇지 않게 받은 것은 이 정권 주변 인사들이 검은 돈을 받고 쓰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영준 전 차관은 일본 출장 중 술 접대를 받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술자리를 주선한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업자에게 “술자리는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며 은폐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가 영업정지 위기에 빠진 저축은행측으로부터 구명 로비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조만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이라고 합니다. 
방죽이 무너지듯, 이런 류의 비리는 앞으로 꼬리를 물고 터져나올 것입니다. 
 


미국에서 공식 발매 된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


그런데도 대통령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호언하고, 걸핏하면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없는 정권을 만들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눈귀가 멀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청와대 민정,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같은 사정기관이 온통 ‘내 사람’이거나 끼리끼리 식구들이니 무엇을 적발하고, 무엇을 엄단하겠습니까. 그 식구들이 '형님'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지, 아니면 역부족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검찰은 지금 ‘벤츠 여검사’란 검찰 창설이래 최대 악재에 휘말려든 상황입니다. 어쩌면 권력 실세 수사가 이런 악재를 물타기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릇 권력기관이란 곳은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이고, 바람이 지나가면 일어섭니다.
이들은 힘 빠진 권력에 칼을 꽂아야만 새 정부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검찰은 항상 새 권력의 편이었지, 지나간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올 것이 온 것뿐, 이상할 것도 놀랄 것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