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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포기하지 마, 일본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강진과 쓰나미로 그 피해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일본은 하루 아침에 생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전 인류사적으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대재앙이 지금, 이웃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인터넷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선 일본 피해를 안타까워하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피해가 여기서 멈추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내세요”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이 밤 지진으로 공포와 근심에 휩싸인 그대들을 위해 잠들지 않은채 염려하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포털에서는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자발적 모금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시작한 구호 모금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의 이웃 일본이 이 재난을 잘 극복하기 바란다는 기원이 깔려 있습니다. 가슴 뭉클해지는 따뜻한 얘깁니다.

이제 천재지변은 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함께 걱정하고 부축해야 할 공통사가 됐습니다. 전 세계 69개 국가와 국제기구에서 긴급구조단이 인명 구조와 피해 복구를 위해 속속 일본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원을 준비중입니다. 가능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력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구원(舊怨)이나 정서적 간극이 있다 하더라도 애사(哀事)가 닥치면 뒷전으로 제쳐놓는게 우리네 미덕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재난을 당했다면, 이웃 일본도 그리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여 자극적인 언사는 금물입니다. ‘일본 침몰’이란 제목을 뽑은 일부 언론의 기사는 유감입니다. 일본 사상 최악의 재앙을 압축하는 키워드로 욕심이 났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잃고 신음하는 나라와 국민들에게 차마 못 할 자극적인 표현입니다. 지금 일본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 불안과 슬픔을 똑같이 우리가 겪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 침몰’이란 표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생수를 배급 받기 위해 운동장에 S자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을 보며 배우는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상황속에서도 특유의 냉정을 유지하는 듯 합니다. 새치기는 없습니다. 스트레스로 모유가 안 나오는 젊은 어머니는 24시간 마트 앞에 줄을 서 우유를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피난소에서 한 아저씨가 “이제 어떡하느냐”고 한숨을 내쉬자 곁에 있는 고교생이 “괜찮아요. 우리들이 어른이 되면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 놓을께요”라고 위로했다는 전언입니다. 생수를 배급받기 위해 운동장을 빙 돌아 수백미터씩 줄 서 있는 그들의 침착과 냉정은 감동을 넘어 섬찟하기까지 합니다. 대재앙속에 일본이 보여준 이런 문화에 세계도 놀라고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힘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대재앙의 피해는 구체화되고, 쓰나미가 할퀴고 간 지역에선 수많은 시신들이 발견될 것입니다. 원전 비상사태나 화산 폭발, 강력한 여진 등이 이어질 경우 재앙의 끝이 어디일지 짐작하기조차 두렵습니다. 이런 때 경솔한 말 한마디, 섣부른 글, 자극적인 동영상 하나가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화인(火因)처럼 남게 될 것입니다.      

경향신문 온라인에선 반일 감정을 조장할 수 있는 댓글은 즉시 삭제할 방침입니다. 지금까지 댓글 삭제는 대부분 성인 사이트 광고에 집중됐을 뿐, 관리자의 재량은 최소한으로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벌받는 것” “고소하다” “통쾌하다”는 류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반 이성적 글은 삭제와 함께 IP 차단조치도 병행할까 합니다. 독자들께서도 양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인디펜던트 일요일자 신문 1면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일요일자 신문 1면 톱 제목으로 ‘Don't give up, Japan(포기하지 마라, 일본)’을 내 걸었습니다. 이 신문 사진이 트위터에 오르자 많은 일본인들이 ‘Thanks UK!!!’라며 감사의 멘션을 보냈다고 합니다.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가랑잎보다 더 무기력하다는 것을 이번에 똑똑히 보았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는 것 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본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이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이 자랑스러워 하는, 그들 곁에 대한민국이 있어 행복해 하는 그런 이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