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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저널리즘 원칙을 되새기며

디지털뉴스 편집장 박래용입니다. 송구영신. 새해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바 이루시기 바랍니다.

한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왔다는게 별다른 감명이 오지 않습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 심드렁해진채 먼저 방으로 들어가는 해가 늘어만 갑니다. 감정이 건조해진걸까요, 세월의 켜가 무뎌진걸까요. 며칠전 한 전 의원이 보낸 트위터를 보았습니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개 정도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개의 별이 있다. 지구는 그저 우리 은하계의 암석과 금속으로 이뤄진 조그마한 바위 덩어리이다. 지구라는 별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우주의 역사 50억년을 1년으로 줄인다면 지구의 탄생은 9월 중순쯤 어느 날 일어난 사건이다. 그후 10일쯤 지나서 최초의 생물이 싹텄다. 인간의 조상이 불을 길들여서 이용하게 된 역사는 연말의 마지막 15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에 나온 내용입니다. 5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가 불을 처음 사용한 때가 자정 15분 전이라니…. 그러니 태양의 현출(顯出)을 365번에 한 개씩 묶어 매듭을 지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해 아젠다는 전 해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쏴볼테면 쏴보라”는 일전불사로 요약된 정부의 대북정책은 고스란히 새해로 이월됐습니다. 




전쟁 위기가 이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었지만, 문제는 이런 일촉즉발의 긴장이 계속될 것이란 점입니다. 당연히 전쟁과 평화는 제1의 화두가 될 것이고, 남북 대치는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파장을 낳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더욱 첨예화될 것은 물론입니다. 

요즘 한창 부각되고 있는 '복지'는 2012년 대선까지 장기 화두로 이어질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이미 여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를 시작으로 대선 잠룡들이 저마다 자신의 복지정책 세우기에 나서고 있는데요. ‘무상급식’에서 시작된 보편적 복지의 끝이 어떻게 귀결될지 궁금합니다.    




정치적으로는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권력집단의 변화와 쟁투가 본격화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연말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 송년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당장 1월에는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고요. 2월에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임시국회에서 여야간 또 한 차례 격돌이 예상됩니다. 한나라당 22명 의원이 더이상 날치기 들러리를 서지 않을 것이라고 집단선언한 바 있는데요. 여권 내부부터 이견조율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매년 4월 넷째주 목요일은 상반기 재·보선이 열리는 날입니다. 

올해 4월 27일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을과 경남 김해을 재·보선이 예정돼 있습니다. 분당에선 이명박 정부와 야당간, 김해에선 현 정부와 친노 진영간 대결이 벌어질 것입니다. 결과가 여당 패배로 나올 경우 여권내 ‘미래 권력’이라 불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쏠림 현상이 시작될 것이고, 이 정부 레임덕은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집권 4년차,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고 반MB 정서가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다면 박 전 대표는 ‘현재 권력’인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내 권력구도 역시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야당은 어떻습니까. 

야권의 최대 화두는 ‘야권 연대’일 것입니다. 야권 통합 후보 여부는 정권교체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입니다. 이미 다양한 야권통합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천정배·김근태·이인영 최고위원은 ‘빅 텐트론’, 정동영 최고위원은 ‘공동정부론’,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진보대통합 정당론’을 펴고 있죠. 연대 목소리는 높지만, 정당 및 대선주자들의 정책과 이념 차이가 커 진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한켠에선 연대 논의를 진행하며, 다른 한켠에서는 예비주자들간의 지지율 끌어올리기 경쟁이 전개될 것입니다. 총선을 목전에 둔 하반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을까요. 



희망론자들은 뚜렷한 야권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이 연대의 가능성을 높인다거나, 후보 단일화가 깜짝 성사되면 국민적 관심을 더 사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금의 환경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을 발표한 지난 12월 31일 
국내외 보도진이 방통위 사무실에서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종편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전거·뻐꾸기 시계·상품권을 미끼로 기존 신문업계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보수신문이 방송계에도 진출했습니다. 지난해 마지막날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뉴스 선택권을 넓혀 여론 다양성을 제고했다”고 포장했지만, ‘조·중·동·매+연합’의 방송 진출을 놓고 미디어 다양성 운운 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낯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온갖 분탕질을 쳐도 얼마전 재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그 자신이 신문·방송·출판·광고 등 미디어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언론단체에서는 종편·보도채널 선정을 두고 이탈리아식 ‘타락한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재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종편에 선정된 언론사들은 기쁨도 잠시, 이제 생존을 향한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연초 이들 신문을 보니 “후발업체 지원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더군요. 
생존경쟁이 심화되면, 정부가 ‘당근 정책’을 무기 삼아 또 한번 목줄을 죌 것이고, 이들 신생 방송은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자임할 것이니 ‘미디어의 재앙’이란 지적도 과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으로 친여보수언론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토해 낼 정보가 어떤 것일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1959년 4월 30일 이승만 정부 공보실장 명의로 보내온 '경향신문 발간허가취소' 통지서 전문(오른쪽 아래).
경향신문은 '4.19 혁명' 후 1960년 4월 26일 1년 만에 복간됐다. 



그러나 어떤 국민입니까. 5공 ‘땡전’ 뉴스가 보기 싫어 5분 늦게 TV를 켰던 시민들입니다. 우리 시민이 그동안 보여준 민주 역량에 비춰보면 친여보수언론과 수구정치세력의 어떠한 야합도 민심을 이겨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엄중한 시기에 경향신문은 다시 한번 저널리즘의 원칙을 되새기며 불편부당의 자세로 정론직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