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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전쟁 대차대조표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leon@kyunghyang.com


지난 11월 29일 한미 해상 연합훈련이 실시된 첫날, 경계태세를 강화함에 따라 연평도에 주둔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연평도 포격 이후 보수세력들은 연일 전쟁 불사를 외치고 있습니다. 누가 그 기세를 꺾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청와대는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죠.

뭐 틀린 말 한 것 같지 않습니다만 청와대는 시시각각 대통령 메시지를 수정했습니다. 일종의 ‘마사지’라고 볼 수도 있죠. 잘 아시다시피 최종 버전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로 정리됐습니다.
중차대한 대통령의 첫 반응을 놓고, 어느 누가 감히 하지 않은 말씀을 만들어 냈겠습니까마는 여하튼 청와대는 국방비서관이고, 대변인이고, 국방부 장관이고 모두 없는 말을 옮겼다고 경을 쳤습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누군들 강경론을 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임 국방장관은 “북한이 또 도발해오면 완전 굴복할 때까지 응징하겠다”고 전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국방 장관이 말하는 ‘완전 굴복’이란 아마 항복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북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온 화력을 쏟아붓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쟁 개시입니다. 3대 세습에서 보듯 북한은 김씨 왕조 체제입니다. 남한의 폭격은 북한의 지휘부와 군을 광적으로 자극했으면 했지, 쉽사리 두 손 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남북한 사이에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첨단무기로 무장한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남북한 모두 ‘민족의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클린턴 정부가 만든 전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 시민 약 150만명이 사상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 1주일을 넘어서면 약 500만명의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경제적으로는 1000억 달러의 손실과 3000억 달러의 피해 복구 비용이 예상됐습니다.

이는 1994년 당시 경제 규모를 기준으로 한 피해 예상치입니다.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는 10년 전보다 피해 추정치가 1.5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즉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는 1994년 추정치 150만명에서 230여만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중국이 자동 개입하리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우리 군에서도 공식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중국은 1961년 북한과 체결한 ‘조·중 상호 원조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에 따라 북한 영토가 침략을 받았을 때 군사 지원하기로 돼 있습니다. 중국은 유사시 18개 사단 40여만명을 참전시킬 것으로 합참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세계 최고의 화력과 엄청난 병력이 집중되면서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전투기 폭격으로 뜨거운 맛을 보여 주자는 전쟁 불사론은 미·중 전면전도 거리낌없다는 비이성적 전쟁 광기에 빠져 있지 않고서야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전쟁보다 17배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무기체계의 발달과 인구 증가, 경제 성장 때문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500만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는 당시 전 가옥의 60%가 파괴됐습니다다. 여기에 17배를 곱해보십시오. 호전적 극우세력이 말하는 전면전을 각오하고 북한을 공격할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선명하게 나옵니다.

연평도 탈출 주민 1000여명이 찜질방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100배, 1000배가 넘는 시민이 오갈데 없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십시오. 그땐 찜질방도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전쟁을 하자는 건가요.

엊그제 중앙일보는 생전에 혹독했던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사후에 크게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남북화해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은 5년 전인 2005년 56.8%에서 이번 조사결과 80.1%로 긍정적 평가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83.7%에서 86.7%로 올랐습니다. 친여 보수언론은 ‘햇볕 정책 10년이 연평도 포격을 불렀다’고 선동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론조사 결과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강경 일변도인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 평점은 33.2%만 긍정 평가했는데,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긍정은 36.8%에 불과했습니다.

친여 보수언론의 안보 장사가 호황을 누리고, 호전적 극우세력들이 제 세상 만난 듯 활개치고 있습니다. 천안한 침몰 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전쟁을 외치면 애국이고, 평화를 말하면 이적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직후 6·2 지방선거 결과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한나라당은 “우리가 오만했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여기고, 가르치려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언론이 말하면 선이고, 정의이던 시대도 끝났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내일이라도 선거를 한번 치러 봤으면 좋겠습니다. 결과는 필시 전쟁, 전쟁을 외치는 세력이 또 한번 제 발등을 찍은 것일 겁니다.     


 추신: 연평도 포격 직전, 여권은 대포폰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재수사나 국정조사, 특검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은 그런 대형 이슈를 단숨에 날려버렸습니다.
  거꾸로 여권은 이제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목의 가시 같던 몇가지 난제들을 하나씩 둘씩 처리해 나가는 양상입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연평도에 쏠려 있는 사이 해외로 도망간 대통령의 친구를 귀국시켜 슬그머니 사법처리하고, 한·미 FTA를 서둘러 종결짓고, 4대강 예산안까지 처리하려 하고 있습니다. 연평도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참 잘도 뽕을 뽑아 먹는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