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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검찰 사정수사 이렇게 보세요

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leon@kyunghyang.com


요즘 언론의 주요 이슈는 단연 검찰 수사입니다. 이번 주는 검찰 수사만 몇가지 포인트별로 나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를테면 ‘관전법’이라고나 할까요.
 
한화그룹·태광그룹 수사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검 중수부에서는 뒤늦게 C&그룹 수사에 착수해 임병석 회장을 지난 주말에 구속했죠. 압수수색과 동시에 기업 오너를 체포하고 구속까지 한 것은 초스피드, 속전속결 수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꿔 말하면 검찰은 수사의 큰 그림을 다 그려 놓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태광그룹 계열사 흥국생명 광화문 사옥



서부지검은 승격되기 전에는 재경 지청(동부·남부·북부·서부지청) 중에서 가장 막내 급이었습니다. 그 서열은 지검으로 승격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화·태광 같은 큰 재벌 그룹을 서부지검에서 맡고, 재계 서열 71위에 불과한 조그마한 C&그룹을 대한민국 사정수사의 총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대검 중수부에서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첫번째 관전 포인트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검찰의 칼 끝이 기업이 아니라 그 뒤 배후 인물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대검 중수부에서 조그만한 기업 오너의 횡령사건이나 손 대려고 나설 리 없고, 그런 정도의 사건은 격에도 맞지 않죠. C&그룹은 소규모 해운업체였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과감하게 다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면서 갑자기 재계 서열 71위의 중견기업으로 커졌던 기업입니다. 

결국 이렇게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뒤를 봐준 정·관계 인사들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거죠.

임병석 회장은 전남 영광 출신인데다 그룹 자체가 호남 지역에 근거를 두면서 성장했습니다. 임 회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인사들과 폭넓게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수사 대상은 주로 전 정권 인사들이 대거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C&수사는 ‘제2의 박연차 게이트’ 규모의 매머드급 폭탄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1일 경찰의 날 치사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대통령은 “만연해있는 권력비리, 토착비리, 교육비리를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 불법에 대해선 단호하게 공권력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4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9인 회동에서도 최근 사정 정국과 관련해 얘기가 오고갔다는데요. 참석자들은 “이번 수사는 기획 사정이나 표적 수사가 아니다. 정치인 이름이 나오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는데 공감했다고 합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번 사정은 야당이 아니라 구 여당에 대한 수사”라고 말했다는군요.

여담이지만, C&그룹의 이름이 좀 독특한데요. 작명의 사연이 이렇답니다.
임병석 회장은 1990년 칠산해운을 설립했는데요. 고향인 전남 영광군 법성포 앞바다 어장 이름이 ‘칠산(七山)’인데서 따왔다는군요. 95년에는 이를 영문인 ‘세븐 마운틴 해운’으로 바꿨습니다. 그룹 이름 작명치고는 좀 단순하죠. 2006년에는 이를 다시 지금의 ‘C&그룹’으로 변경했습니다.
당시 그룹측은 “영어 알파벳 C의 발음이 바다를 뜻하는 ‘sea’와 같아 해운업이 기업의 뿌리임을 나타내고, 앞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의미로 ‘그리고(and)라는 뜻의 기호 &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두번째 관전 포인트는 수사 대상입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궁금한 것은 누가 관련돼 있을까라는 것인데요. 이런 얘기는 아무래도 정치권이나 기업, 검찰 주변에서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 

먼저 C&그룹과 관련해서는 지역구가 전남 영광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이 의원은 “임 회장은 고향 후배로 친한 건 사실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고 실제 내게 한번도 뭘 부탁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 연고상 구 민주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의 이름도 나오고 있는데요. 그래서 일부에선 “박연차 수사가 ‘경부선 수사’였다면, C&수사는 ‘호남선 수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광그룹 수사는 전 정권과 현 정권 인사가 모두 겹쳐 있는데요. 그룹의 확장 시기가 전·현 정부를 모두 망라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맨 먼저 공개석상에서 이를 언급한 사람은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입니다. 진 의원은 지난 주 국회 방송통신위 국감에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실질적인 태광 로비의 몸통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다. 진 의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이백만 홍보수석, 조창현 방송위원장, 최민희 방송위 부위원장, 정동채·김명곤 문화부장관의 연루 의혹도 함께 제기했는데요. 국감장에서 한 발언이라 그에겐 면책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박 원내대표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답했더군요.  





 

현 정부 로비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예 태광그룹의 법인카드를 통째로 방통위 고위 간부에게 넘겨줘 사용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고요. 

지난해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은 당시에는 공무원 개인의 단순 일탈 행위 정도로 수사가 종결됐지만 지금 보니 정치권 로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검찰이 재수사를 안할 수가 없게 됐지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태광의 법인 카드를 받아 쓴 사람은 없다”고 부인했지만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세번째는 수사 시기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11월 11~12일은 G20이 열릴 예정입니다. G20 정상회의는 정부가 국가적 이벤트로 목을 매고 있는 주요 행사인데요. 행사 시기를 역산하면 아무리 늦어도 11월 둘째 주(8일)부터는 신문이고 방송이고 거의 모든 언론은 G20 분위기로 나가기를 정부는 희망할 것 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대기업 수사가 그 전에 마무리되거나, 아니면 잠시 소강상태로 휴전했다가 행사가 끝난 뒤 재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진행 상황을 보면 행사 이전에 수사가 종결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행사 기간 중 휴전은 정부의 소망사항일 뿐, 언론에서 순순이 받아들여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다면 애초 수사를 G20 이후로 미루지 않고 일찍 시작했을까요. 

거기엔 뭔가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부지검의 태광그룹 수사는 검찰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해고자를 중심으로 한 모임에서 여기저기 언론에 제보다, 고발이다 해서 워낙 들쑤시고 다닌게 많아서 피할 수 없는, 떼밀려서 수사를 시작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태광 수사는 현 정부쪽에 더 부담이 간다고 봐야겠습니다. 태광그룹이 케이블 방송사를 인수·합병하도록 승인하고 방송법을 개정해준 것은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로비가 이뤄진 정황이 분명하고요.

그러던 중에 대검의 C&그룹 수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야당에선 이를 야당 죽이기가 초점인 ‘기획성 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C&그룹이 사실상 거의 파산 직전의 식물기업이나 다름없는데 검찰이 그룹 수사에 나선 데에는 뭔가 숨은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국감이 한창 뜨겁게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때 기업 수사가 잇따라 터져나온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덕분에 신문의 앞 면은 기업수사로 도배되고, 4대강·민간인 사찰 등 올 국감의 주요 이슈는 한참 뒤로 밀려나 버렸죠. 

재계 군기잡기도 하나일 수 있습니다. 검찰 수사와 별도로 국세청에선 롯데건설, 제일기획 등 대기업 몇 곳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들어갔는데요. 대기업들은 예기치 않은 검찰과 국세청의 ‘쌍포’에 대경실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든지, 기업들은 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넷째는 향후 수사 속보 보도입니다.
 

검찰은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선 결코 공식적으로 수사 대상자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곧바로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되니까요.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수사 대상자의 실명은 여러 경로를 통해 ‘리크(leak·누설이라는 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연차 게이트’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때도 어느 신문이나 방송에 먼저 기사가 보도되게 한 뒤 다른 언론사의 소나기같은 확인 요청에 부인하지 않는 식으로 간접 확인해주는 방식이죠. ‘검찰의 NCND(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것)는 곧 시인’이란 등식은 검찰 출입기자들에겐 오랜 불문율 같은 것입니다.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크의 경로는 검찰 간부들과의 여러 사적인 자리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청와대나 한나라당 쪽 고위 인사들로부터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느 식사자리에서 책임있는 고위 간부가 “OOO도 걸려 있는 것 같던데…사회부에 한번 알아보라고 해라”고 하면, 웬만큼 눈치있는 기자라면 기사로 쓰라는 얘기로 받아들이는게 통례입니다.
과거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로비 수사’때는 청와대 고위 간부가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거의 매일 수사 브리핑을 해줬다는 얘기가 언론계에선 대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리크의 목적은 수사 스케줄에 따른 원활한 진행과 수사 대상자의 반응 타진, 여론 동향을 보기 위한 애드벌룬용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엔 모 조간신문에서 ‘대검 중수부 대기업 2~3곳 내사, 비자금 만들어 정·관계 로비한 단서 포착’이란 기사가 1면 톱으로 보도됐습니다. 검찰은 당일 아침 이 기사를 확인이라도 해주듯 C&그룹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기업 오너를 체포했죠.    
 
월요일 아침 모 신문에는 “전 정권 소장파에 법인카드 로비”라며 야권의 소장파 핵심이라며 L·S·Y 전 의원 등의 이니셜이 거명됐습니다. 사정 수사의 정형을 보는 듯 하죠.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동향입니다.

 
대검과 산하 지검에서 대대적인 기업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뭘하고 있을까요.

서울지검 특수부는 ‘사정수사의 최정예 부대’입니다. 검찰이 대대적인 사정 수사에 나섰는데 특수부가 뒷짐만 지고 있을리 없습니다. 외견상 현재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역설적으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특수부까지 가세한다면 명실상부한 진짜 사정 국면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검찰 수사는 정치권, 특히 야당과 대기업들을 바짝 긴장케 만드는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는데요. 앞으로 있을 정기국회나 연말 예산안, 각종 밀린 법안 처리에 이보다 더 좋은 채찍은 없을 것입니다. 검찰 수사는 당시는 어영부영 넘어갈지언정 얼마 있지 않아 그 배경이 하나씩 둘씩 뒷얘기가 나오게 마련인데요.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지금 검찰 수사를 흔쾌한 눈으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대변인은 “검찰이 손을 놓은 수사가 한 둘이 아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도곡동 땅 실소유 여부에 관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사실상 방치 △이 대통령의 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대우해양조선 로비 의혹 수사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에 대한 미온적 대응 △청와대의 개입 증거에도 불구하고 재수사 의사 없는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등을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과 관련된 사건들을 ‘과거’로 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는 살아있는 권력 사건도 과거 권력 사건처럼 파헤쳐보란 얘기죠. 뼈아픈 지적입니다. 


태광 로비의혹 수사, 어떻게 이뤄져왔나 - 진행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