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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hyang

[향이의 SNS 팡팡]"지구반대편에서 오신 푸른눈의 성자를 존경합니다"

[향이의 SNS 팡팡] “지구반대편에서 오신 푸른눈의 성자”

경향신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지기인 ‘향이’가 주간 SNS 화제 게시물들을 소개해드립니다. 또 SNS 이용자들의 반응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 지난주 인터넷을 수놓은 것은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습니다. 14일 오전 10시30분에 한국 땅을 밟았다가 18일 오후 1시쯤 다시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리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일단 첫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영접을 나온 이들 중 세월호 유족에게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다음날 오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실 때는 노란리본을 달고 나타나셨죠. 미사 직전 세월호 유가족들을 따로 만나 선물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때 유가족들이 900km를 도보순례하며 짊어지고 왔던 6kg의 십자가는 로마로 직접 가져가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16일 오전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미사 때는 카퍼레이드 중 이례적으로 내려서 단식 33일째였던 김영오씨(세월호 희생자인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를 만나 위로하셨습니다. 그때 김영오씨가 건넨 편지는 직접 주머니에 넣으시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교통사고’ 비유와 ‘제대로 단식했으면 병원에 실려갔어야 했다’는 발언, ‘유가족이 벼슬이냐’는 일부의 시선,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여당에 끌려간 새정치민주연합까지…. “이대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흐지부지 되는 것인가”하고 노심초사했던 희생자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교황과의 만남은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교황을 만난 유가족들은 “처음 존중받은 느낌… 큰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심정을 담은 이 기사는 트위터에서는 1577회 재전송됐고 페이스북에서는 6만855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044차례 공유됐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 이**님이 올린 “종교와 상관없이 지구반대편에서 오신 푸른눈의 성자를 존경합니다”라는 댓글엔 다른 이용자이 362차례 ‘좋아요’를 눌렀네요.


■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란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했다는 기사는 트위터에서 2320차례 재전송됐고요, 페이스북에선 5만6525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417차례 공유됐네요.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시복미사 직전 카퍼레이드 때 이례적으로 차에서 내려 김영오씨에게 다가가 위로를 해주었지요. 이 모습을 포착한 기사는 트위터에서 791회 재전송됐고, 페이스북에서는 5만4991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1018차례 공유됐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 배**님이 남긴 “자국의 대통령도, 매일 외치는 유민아버지를 지척에 두고도 외면했는데...고맙습니다”라는 댓글엔 706개의 ‘좋아요’가 붙었네요.

 ‘울림있는’ 강론 역시 화제였습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화해와 연대와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가는 끝없는 도전” “이 비극적인 사건(세월호 참사)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 “막대한 부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등등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이란 짦은 기간 동안에도 ‘어록’을 남기셨네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기 직전엔 로빈 윌리엄스의 갑작스런 죽음이 누리꾼들을 놀라게 했지요. 그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담긴 게시물은 트위터에서 766차례 재전송되고 페이스북에선 1175명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누리꾼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을 떠올리며 ‘oh captain my captain’이나 ‘R.I.P(Rest in Peace)’ 등의 댓글을 남기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승만의 드러나지 않았던 행적을 밝혀낸 기사도 반응이 컸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미국의 한인기독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인은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일제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발언을 반복하는 미 여교사에게 반발했다고 “(한인 학생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라”고 지시했고, ‘독립운동 성금’ 1100달러를 쥐고 내놓지 않으려 하는 등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했다기엔 민망한(?) 일들을 많이 한 사실이 사료로 입증됐습니다.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서 4164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트위터에선 846차례 재전송됐네요. 페이스북 독자 Yo*********님은 "(이승만은) 철저히 미국의 여론, 정서에 맞춰가며 살았던 분. 미국의 뜻대로 가는 것이 자신의 출세를 보장하는 길이라 봤었던 분"이라는 자신의 의견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