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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답한다

[전문]기자가답한다(6) 클래식 문학수 선임기자

 서양 고전음악의 통칭인 '클래식 음악'은 보통 상위문화처럼 여겨집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니 좋은 음악도 선뜻 듣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죠. 더군다나 요즘처럼 TV와 라디오에다 스마트폰같은 개인오디오장비를 비롯해 대중교통같은 공공의 공간에도 음악이 넘쳐나는 때에, 진행이 느리고 길이도 긴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상품성이 최고인 시대인지라 '팔릴 만하게' 포장한 음악들도 넘쳐나니 '내성적이고 속깊은 사람'같은 클래식과 친구를 맺기란 더욱 쉽지 않죠. 



 경향신문의 클래식 전문기자인 문학수 선임기자는 그같은 편견을 깨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게)라는 클래식 입문서를 펴내기도 한 문 기자가 지난 30일 오후, 경향신문 페이스북에서 독자들과 함께 '기자가 답한다' SNS데이트를 가졌습니다. 그 전문을 소개할게요. 

 클래식 입문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아주 알찬 이야기들이 오갔답니다. ;) 


노트북 자판 위를 움직이는 저 손! 마치 솜씨좋은 피아니스트의 건반 위의 손 같지 않나요?


-요즘 가장 각광받는 신진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추천해주세요!

“요즘 각광받는 지휘자는 아무래도 구스타보 두다멜이 가장 핫하겠지요. 라틴 출신답게 굉장히 뜨겁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힐러리 한, 멋진 거 같아요. 아참 한국 출신 중에는 김수연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는데, 소리도 좋고 해석도 깊어요. 관심 가져보세요. 피아니스트는 으... 넘 많다.”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가 금기시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클래식 음악이 정치적으로 악용(?), 이용된 사례는 없는지요?

“음악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경우는 참 많지요. 특히 나치 시절에 그랬지요. 포로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갈 때 바그너의 순레자의 노래가 울려퍼지기도 했지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나치 시절에 국가주의적 음악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도 스탈린의 공포와 자신의 예술가적 자의식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죠.”


-클래식 음악 감상을 입문하려면 어떤 과정이 가장 좋을까요? 초급. 중급. 고급 이렇게 클래식 음악 감상능력에도 등급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좀 안타까워요. 문제를 선명하게 인식하기 위해선 극단적 표현이 유용할 때가 많은데, 그런 전제하에서 얘기하자면, 음악 듣기에는 급이 없어요. 그냥 듣는 거죠. 

 그렇게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은 자꾸 반복해 듣는거죠. 그러다보면 음악을 좋아하게 되요.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 없이는 살기 힘들어지기도 하지요. 문제는 실제로 듣지 않고, 초, 중, 고급에 대해 자꾸만 머릿속으로 생각한다는 거죠. 이건 굉장히 근대적 태도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우리가 받은 교육의 폐해 같기도 해요. 

 자, 음악은 그냥 급 없이 듣는 것,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듣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반복해서 듣는 것... 그렇게 하다 음악이 좋아지게 되면, 지금 제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게 될 거예요.”


-클래식 하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 조수미씨가 아닐까 싶은데요. 조수미씨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떤가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ㅋㅋ)

“음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아무래도 지금의 조수미씨가 한창 때의 기량은 아니지요.

 어떤 음악가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를 확인하려면, 세계의 주요한 공연장이나 주요한 프로덕션들, 유럽 여러 나라의 중요한 오페라 단체들에서 그를 부르느냐, 안 부르냐가 하나의 척도가 됩니다. 음... 조수미 경우는... 음 인터넷을 통해 직접 확해보실 수 잇습니다. 이건 조수미씨에 대한 얘기는 아닌데, 사실 국내에서 호평, 어떤 때는 극단적 호평을 받는 연주자나 성악가들에 대한 평이, 꼭 객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잇는데, 오늘은 이 정도로.”


-클래식이라면 많은 분들이 어렵다는 인식이 큰데요~ 듣기 쉽고 어렵지 않은, 한마디러 입문하기에 좋은 음악가가 있다면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굉장히 많아요. 사실 곡의 제목을 몰라서 그럴 뿐이지, 질문하신 분도 이미 아주 많은 클래식 음악을 알고 있답니다. 

 문제는 어딘가에서 흘러나와서 내 귀에 꽂힌 음악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로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 먼저 그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것처럼, 제목을 기억하는 것, 그 다음에 그 음악을 음반으로 사서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보는 것, 그러면 음악이 내것이 됩니다. 여기엔 열정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할 수 없는 삶의 조건에 처해잇지요. 그래서 안타깝지요. 입문자용 클래식이라던가,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소품. 이런 식의 음악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심지어는 쇼스타코비치의 현대음악, 아니면 아예 쇤베르크의 무조성 음악도 여러 번 듣다보면 재밌어져요.”



문학수 선임기자는 매우 유쾌한 선배입니다. 점잔빼는 적도, 거드름피우는 적도 없이 후배들의 질문에 하하 웃으면서 대답해주시고는 하죠.




-질문입니다! 클래식 피아노는 꼭 하농, 체르니 같은것에서만 시작해야 하나요? ㅠㅠ - 체르니 100번이상 진도 못나가본 1인

“하농과 체르니.... 참 지겹죠?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연주를 하지는 못하지만, 연주자 친구나 후배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 힘들어도 그 산을 한번은 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아자아자!”


-취미로 클라리넷을 시작하려는 직장인입니다; 클래식 악기 구입에 관한 질문인데요, 클라리넷을 살 때 본체가 나무로 된 것과 플라스틱으로 된 게 있던데, 장단점이 있을까요? 아 막상 사려고 하니 너무 고민이네요;

“아 이건 저도 답변하기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가격도 다를 테고.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저한테 비슷한 질문을 하시던데.... 그때도 딱 부러진 답변을 못했습니다. 악기 전문가들과 상의하시는 게 더 도움이 되실 겁니다. 쏘리쏘리~”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지금 말하고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면 좋겠다, 는 생각에 입맛을 다지게 되는 부작용이 있지만요. 오르겔하우스에서 하는 북토크를 갔었는데요. 혹시 독자들과 같이 듣고 싶었는데 못 들었던 음악있으세요?ㅎ

“굉장히 많아요. 그날 오르겔하우스에서 두곡쯤 들엇는데,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독자들과 만나면서 많은 음악을 들었어요. 베토벤, 쇼스타코비치, 바흐 마태수난곡, 기타 등등... 그래도 들어야할 음악은 아직도 너무 많아요. 밤하늘의 별처럼. 그리고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은 졸저를 애정 갖고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진심이랍니다.”


-어릴 적 엄마가 TV를 보다가 무심코 “과학은 엄청 발달하는데, 왜 클래식 음악은 몇백 년 전에 하던 걸 계속 하니?”라고 의문을 던진 적 있었습니다. 

물론 바흐, 베토벤 등 거장의 음악들 여전히 듣기 좋은 것이 많지만 정말 엄마가 가진 생각이 사실인지 궁금하네요^^ 클래식 음악의 정의에 대한 편견 때문일까요?

“작곡가들은 음악을 지금도 계속 작곡하고 있죠. 문제는 연주가 안된다는 것. 이렇게 된 것은 약 50년쯤 됩니다. 그전까지 연주는 대부분 당대 음악가들의 연주가 중심이었습니다. 

두가지 원인이 잇는 거 같아요. 하나는 쇤베르크 이후 작곡가들의 언어가 지나치게 추상화된 경향을 부정하기 어렵고, 또 하나는 음악산업이 자본에 휘둘리게 됐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청중이 많이 올 수 잇는 연주회만 제작되는 거죠. 연주회도 음반도. 그러다보니 현재진행형으로 생산되는 음악은 점점 더 대중에세거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답니다. 사견을 좀더 추가하자면, 작금의 시대는 이른바 클래식 음악과는 아무래도 부조화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이 너무 없어요. 세상의 너무 속도가 빨라요.”


-그렇군요. 최근에는 주로 클래식을 뮤지컬이나 피겨스케이팅 음악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저도 김연아 선수 때문에 피겨스케이팅 보면서 ‘죽음의 무도’나 ‘종’, ‘목신의 오후’ 같은 걸 알게 됐습니다. 클래식 음악 작곡하고 싶어하는 사촌이 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진입장벽이 높아서 힘들어해요 ㅠ.ㅠ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진입장벽도 낮아질 텐데란 생각이 듭니다. 김연아 선수 2연패(?)하면 피겨스케이팅 음악을 테마로 기사 한 번 써 주세요^^

“오케이! 피겨 스케이팅에서 많이 쓰이는 음악은 아무대로 ‘춤’적인 표현이 강조된 음악들이죠. 화성보다는 선율 중심의 음악이 많은 거 같구요.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하는데, 그게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줘야해요. 악기도 가르쳐주고. 그래야 어른이 돼서도 음악이 낯설지 읺을 텐데...그리구 무엇보다 시민들이 시간과 돈을 가질 수 잇는 세상이 돼야, 클래식이든 뭐든, 예술을 향유할 수 잇게 돼요. 그래서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가 중요한 거 같아요.“


-작곡가 중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가장 잘 표현하는 연주자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반을 살 때 참고하려고요.

“아무래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가장 중요한 연주자인 것 같아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당히 중립적인 편에 속하는 연주입니다. 러시아 출신이구요, 라흐의 음악에 대해 아주 많이 연구한 피아니스트죠.”


-문기자님이 추천하시는 ‘이건 꼭 소장해야 하는 필청의 클래식 음반’ 5개 정도 추천 부탁드립니다. 바로크부터 낭만주의까지 정도면 좋겠어요.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음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넘 다르거든요. 

 누구의 추천을 받기보다는 본인이 음악을 듣다가 사무치게 필이 꽂히는 음악이 생기면, 그게 바로 필청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이화여대 강의갔는데, 끝나고 나서 3학년 학생이 ‘내 인생의 클래식’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음악 한 곡만 추천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좀 당황했죠. 어찌 보면 우문이지만, 그 학생 입장에서는 간절한 질문일 수도 잇어서. 한 10초동안 엄청 고민했어요. 그래서 권한 곡과 음반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자는 프랑스 첼리스트 피에르 푸르니에였습니다. 물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명연은 많지요.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는 역시 푸르니에가 최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 음악의 올바른 영어 표기는 claasical music 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classic music이라고 더 많이 쓰고 있는 걸까요?

“네 클래시컬 뮤직이 맞지요. 관습적으로 클래식 음악이란 말을 쓰다가, 그냥 굳어져 버린 거라고 봐야겠지요. 애초에는 서양음악중에서도 고전주의 음악을 일컫는 말이지요. 하이든, 모차르트의 시대요. 우리의 관점에서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서양음악’이라는 용어가 더 맞겠지요.”


이날 '기자가 답한다' 행사를 진행하게 전에 문학수 선임기자는 "나는 독수리 타법이라..."라고 주장하셔서 사실 행사를 진행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정말 속도가 느리면 어떡하지?ㅠㅠ'라는 걱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질문이 나오면 눝눝 누뤁눝하는 초고속으로 댓글을 달아주시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 달리 선임기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권위도 가식도 없는 태도 역시 평소의 목소리만큼이나 근사하시구 말이죠. ^^;


문 선임기자는 "에궁 시간이 다 됐습니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충분이 답변 드리지 못한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나자구요,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라는 인삿말과 함께 이날 한 시간동안 이뤄진 독자 데이트를 마쳤답니다. 


절찬리에 진행되고 있는 경향신문의 독자 SNS 데이트!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