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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람들

경향신문 팔로어, 이대근을 만나다

2월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2층 카페 '효재처럼'에서 경향신문 트위터 팔로어들과 이대근 편집국장이 만났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국 언론에 대해,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날의 대화를 모두 공개합니다!


이대근 : 반갑습니다

구정은(사회자): 트위터로 멘션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희 경향 팔로워가 9만 6000명을 넘어섰습니다. 10만명 돌파를 앞두고 경품추첨이나 여러 행사를 생각 해봤습니다. 그동안 경향을 만드는 사람들과 독자들이 만나 직접 소통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런 행사를 만들게 되었고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눠지는 대화는 트위터로도 중계가 됩니다. 이 자리에 못 오시는 분들의 질문도 트위터를 통해 받게 됩니다.
저희가 언론사중에서는 가장 팔로어가 많고, 또 저희가 팔로잉하는 수도 9만명입니다. 팔로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고, 쪽지도 나누고 싶어서 팔로우를 많이 합니다. 오늘 참석하시는 팔로어님들께 미리 전화드려서 어떤 질문 하실건지 여쭤봤는데요. 경향신문 1면은 어떻게 결정되나 라는 질문을 많이 주셨고, 올해 두차례 선거가 중요하다 보니 선거 얘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오늘 첫 질문하실 분은 언론의 문제에 대해 묻고 싶다고 하신 채성욱님입니다.

채성욱 : 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시작한지 얼마 1년반밖에 안 됐습니다. 대학생 기자를 시작하면서 언론사들 계정을 팔로잉하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가장 트위터 활동을 많이 하셔서 어쩌다보니 정보를 가장 많이 얻고, 요즘은 주간경향을 보고 있는데요. 현재 MBC나 YTN 언론노조는 파업을 하고 있고 KBS도 파업을 준비 중으로 알고있습니다. 또 나꼼수 이털남 뉴스타파 등 대체언론이 봇물터지듯 나오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SNS 발달이 신문이나 방송언론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히려 신문지면의 역할이 더욱 높아지고 관심이 높아진 부분도 보이고요. 결국 이런 대체언론의 생태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메이저 언론의 역할은 어떻게 될것인지와 편집장으로서 바라보는 언론탄압,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분들의 모습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이대근 : 언론의 현실 문제와 그 대안, 대안언론의 등장에서의 기존 언론들과 어떻게 관계맺을까에 관한 질문이시군요. 
우선 한국 언론의 현실을 보면, 척박합니다. 한국에 과연 언론이 있는가라는 회의가 듭니다. 많은 신문들이 있지만 과연 신문이 존재 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가 경제규모로 12위를 넘나들고 있는데 언론의 수준은 선진국에 훨씬 못미치는 언론 후진국입니다.
언론이 세상에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습을 결과적으로 왜곡하고 있는거죠. 세상의 전부가 아닌 세상의 일부를 담고, 그 언론을 통해 비추는 모습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여론을 악화시키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거죠.
한국언론은 정당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당은 특정 이념, 특정 노선을 가지고 있죠? 노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권력을 얻기위해 활동합니다. 당리당략. 즉 그 당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권력을 잡고, 국가를 통치할 공직자 국회위원 장관 등 관직을 갖게 되죠.
한국의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신문사의 이념이 있고 공직자도 배출하고, 권력을 쟁취하고 사람을 모으고 권력을 추구하는게 마치 정당과 같습니다. 언론이 정당을 닮아갈수록 언론은 언론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정당은 영어로 party 즉 부분입니다. 정당은 전체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부분을 대표합니다. 부분끼리 경쟁하면서 사회를 이끌어갑니다. 신문은 부분이 아니기 떄문에, 결코 부분의 가치를 담을 순 없습니다. 언론이 정당처럼 신문을 만들 때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생생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죠. 사실을 이데올로기로 재단하고, 어느 건 과장하고 어느 건 축소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상황을 모르게 이끌어가는게 언론입니다. '사실'은 '진실'과 다르죠. 진실로 가기 위해서는 사실의 안내를 받아야 하지만, 사실이 곧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일부의 사실은 전체의 진실로 기능할 수 없죠. 한국 언론은 결국 이데올로기의 보루, 당파성을 갖고 있는 도구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파성이란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편부당의 반대개념으로 보면 나쁜 것이지만, 중립성의 반대로 당파성을 생각한다면, 언론에서의 중립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는 애매합니다. 정 가운데가 중립일까요? 겉으로는 기울어 있지만 속으로는 중간에 있을 수 있고, 겉으로는 중간이지만 속으로는 기울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기울어져 있음에도 중립을 지킬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당파성은 불가피합니다. 사람도 그렇고 정당도 언론도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진보언론이 있고 보수언론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당파성을 띠고 있거나, 중립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뉴욕타임스 르몽드 산케이 모두 이념성, 당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파성이 있다고 언론이 아니냐? 그건 아닙니다. 당파성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파성의 내용과 성격이 어떤지, 당파성과 관계된 신문을 만드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이것이 조화가 되는지. 뉴욕타임즈는 어떤 후보를 지지하기도 반대하기도 합니다. 당파성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신문으로서 본분을 벗어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일관성을 결여한 당파성을 지녔죠. 우리 편이면 관대하고 상대편이면 엄격하고. 어떤 당이 국회에서 날치기하면 폭거고 또 어떤 당이 하면 다수 의회주의를 한 거고. 최소한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일관성도 갖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언론의 불신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문이 있는가라는 회의까지 들 정도입니다.
나꼼수 뉴스타파 같은 대안언론이 인기를 얻는 것도 결국 언론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는 거죠. 한국 언론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안언론의 등장이 기존 기성언론과 대비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서 하나의 언론역할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언론의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기성언론이 하는건 안 믿고 대안언론은 더 믿고 열광하는 이건 굉장히 특별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채성욱 :
한가지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이런 대체언론들과 심지어 개그콘서트,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을 통해 시사적인 이슈들이 각 방향에서 제기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메이저 신문사의 역할은 어떤 걸까요.

이대근 : 신문의 정도를 걸어야죠. 신문은 풍자를 하는 매체가 아닙니다. 정직하게 세상을 보여줘야죠. 그런데 정직하게 세상을 보여주는데 방해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은 언론사 자체의 이데올로기와 당파성이 있고요, 기성 제도로서의 기득권이 있습니다. 그런것이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방해를 하고요.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전달함으로써 신문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도 한계가 될 수 있고, 기자 개인이 세상을 바로 바라보지 못해서 나타나는 한계도 있고... 여러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을 신문에 그대로 담는 게 말로는 굉장히 쉬운 일인데 왜 안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구조적 요인, 언론인 개인적 능력의 한계, 사회 정치적 상황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언론사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그걸 극복하려 하고, 기자들이 노력들을 더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진원 : 한국외대 4학년입니다. 신문의 본질로 돌아간다고 하셨는데요. 현재 종편들이 출범하고 했는데 경향신문의 필살기가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이대근 : 필살기요? (웃음) 여기 있는 온라인 팀도 필살기 중의 하나입니다. 행사 진행하고 있는 인터랙티브 팀도 마찬가지고요. 온라인 미디어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들이 종편이라는 올드미디어에 올인해서 길을 잃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필살기는 신문의 본령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정직하고 꿋꿋하게 신문을 만듭니다. 신문은 사양사업이고 신문 구독하시는 분이 오늘 행사 시작 전에 물어보니 여기 오신 분들 중 네 분 밖에 안 계실 정도로 적지만, 세상의 중심을 잡고 가장 권위 있게 사실을 포착하고 중심을 잡는 건 신문입니다. 뉴스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오랜 훈련, 긴장감을 갖고 그날그날의 중요한 뉴스와 뉴스 아닌 것을 판단해주는 것은 신문 밖에 없습니다. 신문의 영향력이 작아졌다고 하지만, 신문의 힘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도구는 바뀔 수 있습니다. 온라인이든 트위터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통로는 다양해지지만, 신문이라는 미디어의 힘은 변함없습니다. 불면의 밤을 보내며 새로운 사실을 위해 뛰어다니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만드는 매체가 신문 외에 어딨겠습니까.

안준모 : 제가 맨 처음 투표한 것이 2008년 대선 때였습니다. 그때 야권에서 단일화를 제대로 해줬으면 좀더 이명박 후보에게 강력하게 맞설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야권이 또 한번 단일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통합민주당과 진보통합당 간에 연대에 관한 논의가 오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대근 : 편집국장으로서 드릴 답변은 아니고 개인 '정치평론가' 자격으로 말씀드리는 게 낫겠습니다. 단일화가 어떻게 될지는 저도 정치부장한테 물어보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단일화가 막 시작되려는 움직임은 있죠. 통합진보당에서 많이 제안을 했는데 민주통합당은 관심이 없죠. 혼자서도 다 먹을 수 있고 다 집권한 것 같은 자세를 보이고 있죠.
단일화는 엄청나게 힘듭니다. 큰 쪽이 작은 쪽에 과감히 양보하지 않으면 힘들죠. 과감하게 양보하려면 '과감하게 양보하지 않으면 진다'라는 절박성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통합당은 절박성이 안 보입니다.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전망이 매우 어둡습니다.
총선이라는게, 지역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지역마다 다 단일화하기에는 경우의 수가 많아서, 총선에서의 단일화는 굉장히 어렵죠. 통합진보당 안에서조차 세 그룹이 완전히 통합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의 관계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당이, 심지어 한 당은 이미 집권한 것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을 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총선이 다가오면 여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테고요, 기득권 심리와 여론 압박 사이에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이냐가 관건이 되겠지요. 전망하기가 어려운 것이, 얼마있으면 벌어질 일이라 함부로 말했다 틀리면 엉터리가 되잖아요. (웃음)

채성욱 : 저는 반대로 새누리당 입장에서 총선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당명을 바꾸었고, 비대위를 만들어서 개선을 많이 했죠. 한나라당의 우파적 색체가 많이 옅어지고, 젊은세대 코드를 맞추기 위한 좌클릭도 많이 보이고요. 그 대신에 오히려 진정한 보수층의 표를 잃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대근 :
저도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보수는 자기가 스스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진정성있게 보여줌으로써 표를 모아야하는데 그런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누리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변했다는 걸 보여주면서 여론의 흐름을 추수하는 거죠. 공약을 하루가 다르게 내뱉습니다. 민주통합당도 경쟁심리가 있다 보니 자신들 정체성을 넘는 공약을 막 내놓습니다. 상당수가 진보정당이 내세운걸 베낀 것이죠. 통합진보당은 진보적 정책들을 다 빼앗겼어요. 두 개의 큰 정당과 하나의 작은 정당이 경쟁을 하는데, 경쟁하는 내용을 보니 별 차이들이 없어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아까 party가 부분이라 했는데 우리가 여러 가지 부분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어야해요. 신맛, 떫은맛, 단맛. 그런데 맛이 다 비슷해졌어요. 이번엔 이쪽, 다음 선거에서는 저쪽으로, 4년마다 이쪽저쪽을 오갑니다. 이걸 믿을 수 있나요? 급조된 정책 보고 찍었다가 속게 됩니다. 그럼 또 다른쪽으로 쏠리고. 토대가 불안정합니다. 왜 당명을 바꾸고 그럽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걸 지키면서 실행 가능한 것들에 대한 지지를 공고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준비가 안 되니 인기영합주의로 흐르는 거죠. 한 두달만 잘 속이면 되는거니까. 온갖 교묘한 정책들과 요상한 정책을 내놓아요. 당장 보아도 슈스케 방식을 통한 20대 비례대표니 박칼린을 모셔 오느니 대중 연예인 유명인사 모시기에... 유명 인사가 정치 잘 하면 예능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서 정치하라고 해야죠.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속이는 겁니다.
속지 말고 자기 색깔을 보이고, 정체성을 지키는 정당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아주 불안정하고 순식간에 왼쪽 오른쪽 변하는 것은 순식간에 여러분들을 배신하고 왼쪽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죠. 

김진원 : 진보진영은 도덕성을 그동안 강조해온 탓에 도덕성 문제로 오히려 더 심하게 두들겨 맞는 경향이 있는데요. 차라리 진보가 도덕성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정책으로만 차별성을 가질 순 없을까요? 조그마한 흠결에도 정책 모두가 매도당하고 이런걸 보니까 안타까워서요.

이대근 : 저도 공감합니다. 정치는 도덕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 이후로 도덕과 분리됐죠. 정치는 위험한 직업이고, 갈등 속에서 어느 한 쪽을 버리고 선택하고 하는 것입니다. 버린 쪽은 항의하겠지만, 선택한 쪽은 이익을 봅니다. 불행하지만 정치는 끊임없이 이런 선택을 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특히 진보정당들이 왜 고생하는데 알아주지 않느냐고 시민을 탓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정치가 아닙니다. 다른 직업을 갖거나 시민운동을 해야죠.
정치는 굉장히 전략적이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노선과 정책을 가지고 어떻게 사람을 끌어 모을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잡을 것이며 어떻게 자신들의 정당을 지지하게 만들 수 있을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자자들의 삶을 어떻게 더 낫게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실력을 보여줘야지, 나 열심히 하는데 몰라주냐 이런 건 정치가 아니죠. 

트위터 질문 : 
경향신문은 진보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보진영의 잘못을 오히려 더욱 호되게 비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경향신문의 보도원칙은 무엇입니까, 경향신문의 선거보도 원칙은 무엇입니까. 

이대근 :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시시비비'입니다. 여러분들 실망하셨을지 모르겠지만, 화려한 구호나 멋있는 원칙을 제시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시시하지요, 시시비비라는 것이. 
그러나 우리는 잃어버린겁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합니다. 신문의 기초이고 기본입니다. 한국언론이 잊은 게 이 기본입니다. 신문이 근본으로 두고 있는 이 것을 우리가 잃었습니다. 그것은 시시비비입니다. 여러분들 귀가 따갑게 들은 상투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제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않은데,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 여러분들 귀에 상투적이고 가치도 없고 쓸데없는 주장처럼 보이는데,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경향신문의 평소 원칙도, 선거 보도의 가장 중요한 원칙 또한 시시비비입니다. 
이것 저것 따질 것 따져야 합니다. 이편 저편 가리지 않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이명박이든 한명숙이든, 새누리당이든 민주통합당이든. 우리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기초로 잘못했을 때 잘못한 것이라 비판하고 쓰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태까지 어떤 언론도 이것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눈에 밟히는 것, 현실적인 이익과 관련된 것, 각자 갖고 있는 이념과 배치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이게 잘 안되고 있는데 경향은 이걸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 해냈지만 완벽하게 해냈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걸 강화하겠고 특히 선거의 해에 완벽하게 해내겠습니다. 쉬운일이 아닙니다. 이쪽을 비판하면 저쪽은 환호하고 다른쪽에서는 공격하고 매번 말썽이고 매번 논란이고 매번 시비속에 휘말립니다. 피말립니다. 우리는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단련이 되었습니다. 안팎에서 논란속에서 우리가 항상 걸어온 길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참가자 : 최근에 <나는 꼼수다> 비키니 발언 때문에 경향신문이 공격을 당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만명이 듣는 주요 매체가 된 '나꼼수'를 비판하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므로 경향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근 : 고맙습니다. 우리는 '나꼼수' 전체를 비판한게 아니라 한 사안에 대해서 비판한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 기성 언론의 잘못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꼼수'에 열광하고 있고, 새로운 생각을 갖고 즐겁게 듣고 있고, 저도 개인적으로 지지합니다. 경향은 여기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습니다. '나꼼수'가 했던 여러 가지 중에서 한 사안에 대해 비판한 거죠.
그런데 오해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나꼼수 전체를 비판했다고. 우리가 통합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의 어떤 정책에 대해 비판한 게 그 정당 전체를 부정하는 게 아닌데, 당사자들은 오해를 하는 거죠. 시시비비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사회자 : 그 당시 저희 언팔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웃음) 트위터 질문 다시 소개할께요. 곽노현, 박원순 자제의 병역문제에 대한 경향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있었고요. 또 "경향에는 비정규직이 없나요"라고 물으셨네요.
 
이대근 : 곽노현 교육감의 개인적인 잘못에 대한 비판은 저희의 노선에 맞고 정당합니다. 앞으로 교육개혁 정책을 제대로 하면 정당히 평가하고, 실수하면 실수했다고 말하는 게 신문의 권력이고 신문의 길입니다.
신문이 진실을 말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맛있는 복어를 먹기 위해는 복어 독을 제거해야 합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은 독을 제거하고서라도 복어를 먹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독자들에게 이 맛있는 걸 전달하기 위해 독을 뽑아내는 역할입니다. 복어가 독이 있다고 이 맛있는 걸 포기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폭탄 제거반입니다. 경향은 관공서에 신고 안 합니다. 우리가 달려가서 폭발물에 달려가서 뇌관을 제거합니다. 실수해서 터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고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신문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이걸 피하면 경향신문이 아닙니다. 

사회자 : 트위터 올라온거 다 보느냐고 물으신 분이 있었는데요, 경향 인터랙티브 팀에서 모두 다 봅니다. 편집국에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취합해서 편집국 간부들과 공유하고요. 버그신고라던가 이 기사 확인해주세요 하는 것은 담당기자나 담당부서에 전달을 합니다. 트위터의 자산가치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이렇게 공들이는 저희 트위터 가치를 평가해봤습니다. 2억 8000만원 정도로 나왔어요. 제 생각에는 너무 싸네요. 28억은 될 거 같은데(웃음). 또 팔로어분들께서 RT를 많이 해주셔서 인용비율이 저희 계정은 100%에요. 팔로어님들께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RT 랭킹도 뽑아봤습니다. 가장 많이  RT 된건 2011년 11월 24일입니다. 그날 경향 1면에 한미 FTA 비준안 찬성의원 사진과 명단이 실렸죠? 그것을 알렸던 멘션이 1385회  RT 되었습니다. 굉장히 호응이 높았고요. 2위는 그 전날 한미 FTA 반대 집회가 열립니다라는 안내 멘션이었네요. 파격적 1면 편집에 대한 질문도 많았는데... 김기희님 질문이 있으시다고 하셨지요?

김기희 : 그때 1면을 보면서 참 놀랐습니다. 기자 윤리강령도 그렇고, FTA 찬성의원 명단도 그렇고, 혁신적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 제가 조선일보를 같이 보고 있어서 대비되는 게 많더라고요.
저희 집은 수원이어서, 경향 트위터에 올라온 판하고 저희 집에 온 판이 다른 거예요. 본사에 전화를 해서 '왜 저희 동네에 오는 건 전면에 사진이 없나요'라고 물어서 설명을 들은 후, 서울에서 800원을 주고 구입을 했어요. 두 가지를 가지고 있죠. 이런 1면은 어떻게 구성하게 되셨는지요. 처음으로 시도하시는 것이다 보니 순조롭지는 않았을꺼라 생각해요. 1면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이대근 :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데... 편집국장은 신문으로만 말해야 하는데, 몰래 모여서 영업비밀 공개하는 기분입니다(웃음). 그때 사실은 6면에 들어있던 것입니다. 6면에 올려놓았더니 그림이 예쁜데 너무 안쪽에 있다, 하는 의견이 있어서 1면으로 내보자 했습니다. 1면 내보니까 더 예뻐요. 1면이, 그래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보통 1면에 기사를 쓰는데 그날은 사진만 실었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실패에 대한 공포, 긴장... 이게 신문이냐 집어던질 사람이 상당수겠죠.
실제 그런 반응이 있었어요. 이게 신문이냐. 굉장히 위험한 모험입니다. 모험을 시도해야 됩니다.

아까 당파성을 말씀드렸는데 이건 당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겁니다. 이건 나쁜 놈 좋은 놈을 가른 거죠. 경향은 안 그런다면서 왜 그랬냐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경향신문의 가치는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가치는 결코 왜곡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누락하고 왜곡하고 감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거다, 라고 우리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또 의견이 아닌 중요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누가 이것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반드시 남긴다는, 신문 보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극대화해서 강조한 거고요, 부수적으로 경향신문의 가치를 그것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매일 매일 하면 안되죠. 가끔 가다 해야죠. 1면을 만드는 원칙은, 제가 매일 부장회의에서 강조하는 것인데, 그날 일어났던 뉴스 중 중요한 걸 1면에 쓰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해서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 다음날 종이에 그대로 얹힌다고 누가 보겠습니다.
1면에 얹히는 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가 되는 것, 우리시대의 정신, 논쟁을 촉발시켜서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논쟁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것들, 사람들이 관심 갖고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 오늘 이게 중요하다는 것을 도장 찍는 겁니다. 이게 중요하다, 말하자면 의제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것을 독자들이 모르실까봐 이게 생각해볼 거리다 하고 제시하는 것이죠. 그날 뉴스 중에서 사람들이 관심 갖는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일매일 파격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담고 싶습니다. 친구들, 직장 동료한테 들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을 많이 담습니다. '10대가 아프다' 시리즈가 끝나고 한 고등학생이 류인하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1면에 올렸습니다. 사람 살아가면서 한 조각이 되는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1면에 끌어내서 보았을 때 생각해볼 거리가 됩니다. 1면이라는 위치가 중요하게 만듭니다. 경향이 적극적으로 의제화 하는 겁니다. 다른 신문 1단짜리를 경향이 1면에 올리는 순간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마르셀 뒤샹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지요. 이 작가의 대표작이 '샘'이라는 작품입니다. 변기를 미술관에 그대로 가져다놓고 샘이라 하는거에요. 가공되지 않은거죠. 오브제가 전혀 사람 손을 통한 작업이 없었음에도 미술관 안에 있으면 작품이 됩니다.
경향1면 톱은 모두 작품이다, 라는 자부심으로 만듭니다. 여러분들의 사소한 이야기, 사소한 에피소드, 사소한 대화를 1면 톱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자세로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그게 내 이야기가되고, 나의 특수한 이야기이면서 모두에게 공감 가는 이야기가 됩니다.
고등학생의 편지는 모든 고등학생이 공감할 것입니다. 모든 고등학생의 문제, 모든 어른의 과제, 대통령의 정책적 과제로 만드는겁니다. 1면에 실음으로써 뭔가를 만들어내겠다 하는 자세로 1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박창길 : 제가 경향 1면을 보며 느끼는건, 요사이 국제적인 주제가 그전과 다르게 좀 많이 나오더라는 겁니다. 이게 경향이 변화하는게 아닌가, 세계신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국내 문제에서는 의제가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고 책임감을 가지고 만드는데, 국제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그만큼 의제가 정해져 있는지요. 그런 것들이 1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인지요.

이대근 : 저는 국제뉴스를 적극적으로 1면에 반영하려 합니다. 모든 세계의 권위있는 언론들은 1면 2면의 중요 뉴스가 국제뉴스입니다. 한국만 유독 국내뉴스 중심인데, 국제뉴스를 많이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한국 내의 문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세계화 속에서 한국 내에서 벌어지는 고통들이 다른 나라에서 똑같이 벌어지고요. 이제 더 이상 남의 뉴스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뉴스는 국내 사람들에게 중요하고, 한국의 시민들이 국제적 시각을 가지는데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사고가 많고 일이 많은지, 국제뉴스를 꼭 넣고 싶어도 흥미진진한 사고나 현상들이 국내에 너무 많아서 생각보다 못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참가자 : 저도 1면에 관심이 많은데요. 반면 경향 만의 색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나꼼수'에 대한 삼국카페 성명서를 1면에 실은 건 신선했지만 1월 20일 용산참사 3주기 기사를 경향에서 싣지 않은 건 실망스러웠습니다. 1면 기사의 밸류, 1면 기사의 의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대근 : 용산 3주년 어떻게 할꺼냐. 사실 몇 주년을 맞아 의례적인 기사를 쓰는 건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3주년을 계기로 재개발 문제를 어떻게 다시 조명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만드느냐 하는 거죠. 그걸 못한 거지요. 지금 현재 서민들을 쫓아내는 재개발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왜 1면에 담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100% 수용하지만, 3주년을 왜 안 꺼냈느냐 라는 건... 의례적인 의제를 내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1면은 경향신문의 정체성만을 내세우는 면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맵고 짜고 쓰고 계속 자극적인 것만 먹을 수 없는 거죠. 주식인 밥은 심심하고 반찬과 함께 해야죠. 1면에 매일 정체성만 강조하면 독자들이 싫어할 겁니다. 어제 나온 듯한, 전에 나왔던 것, 어디서 많이 본 것이 되니까요. 새로운 의제를 많이 던지지 못하는거죠. 용산참사 1주년 2주년 3주년 4주년, 전태일열사 10주년, 민주화 25주년...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1면을 만들면 성의 없어 보이고 독자들이 금방 알아챕니다. 정체성 핑계를 대면서 나태하게 만드는구나,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구나 눈치챕니다.

참가자 : 진보적인 발언을 하시는 교수님이 중앙일보를 보십니다. 한겨레, 경향은 정권 비판의 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게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대근 : 비판을 위한 비판은 물립니다. 비판할 게 정권만 있겠습니까?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데, MB정권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그것만 비판해보십시요. 오늘은 이만큼 잘못했고, 또 더 잘못했고... 이런것만 한다면 이것 또한 세상을 왜곡하는 거죠. 세상에 MB만있습니까?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그 다양한 모습을 다 담아야죠. 경향이 그동안 그것만 담았으면 비판 받아야죠.
비판하고 감시할 게 있으면 해야죠. 결정적인 것을 잡으면 물고 안 놓아야죠. 허구헌날 한 얘기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잡겠습니다. 한쪽 면만 붙잡는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박창길 : 진보나 보수의 구도로 이명박을 비판하지 않으면 논설이고 칼럼이 안실려요. 예를 들어 구제역 나름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격을 프레임으로 우선 잡고요. 경향의 구제역 기사를 잘 보았는데, 전체적 구조가 '이명박이 무너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돼요. 경향은 한겨레보다 덜하긴 하지만, 논조를 보면 그런게 묻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대근 : 말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김희태 : 저는 그와 반대로 생각합니다. 정부 비판과 견제기능이 지금 너무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수신문이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신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슈를 선점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꼼수' 몇 명이서 정권의 의혹을 들춰내고 있는데 그동안 경향은 뭘했나요. 보수언론이 선점한 이슈에 묻어가기만 하다 보니 '늘 비판만하는 반정부 매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생깁니다. 기자의 질적인 수준의 한계와 이슈선점에 실패한 탓이 아닐까요?

이대근 : 능력이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신문이 마땅히 해야할 견제와 감시 기능이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보도할 생각입니다. 능력을 점차 키워가고, 또 여러분들이 적극 성원해주시면 더 커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사회자 : 트위터를 통해 올라온 질문입니다. 경향은 삼성에 도전할 수 있느냐, 삼성의 비리와 부도덕을 보도할 수 있는가. 자본으로부터 편집권이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장치는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올라왔네요.

이대근 : 경향은 독립언론입니다. 자본이나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습니다. 다만 경영상 자립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높아지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언론사도 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오는 한계도 있고요.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시비비와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그 긴장과 갈등 사이에서 경향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경향은 아무런 갈등없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어떤 기사는 우리 조직 전체의 기반을, 어떤 기사는 나라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어떤 기사는 다른 이의 명예를 무너뜨릴수도 있습니다. 얼음판 같은 토대 위에서 경향은 하루하루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해낼 수 있습니다.
물론 경향신문도 비판의 대상이 되죠. 편집국에서는 견제와 토론이 이뤄지고, 기자들이 고치고 감시합니다. 내부적으로 그런 체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완벽할 순 없고 한계와 갈등이 있지만. 저희는 신문을 하루하루 갈등 속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만큼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저희의 입장입니다.

참가자 :
 한국사회는 좌와 우로 나뉘어 소통하고 서로 힘을 합칠 수 없게 돼버린 것 같습니다. 언론이 소통을 조화롭게 하는 데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대근 : 세상의 모습을 모두 담고 싶습니다. 좌우 모두가 경향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돈 주고 신문을 샀는데 반쪽짜리 정보만 있으면 계속 사지 않으시겠죠. 저희들이 만드는 신문은 좌우 모든 정보가 담겨 있으면 하는 게 희망입니다.
연인들이 쪼개어 맞추는 패처럼 두 개를 맞추어야 진실이고 사실임을 알게 만드는 건 독자에 대한 모독이죠. 경향신문 자체가 소통의 도구, 좌와 우 모두를 위한 소통의 도구가 되게 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오피니언 페이지에 다양한 견해를 싣기로 하고, 진보는 물론 보수 중도에 이르는 다양한 의견을 싣고 있습니다. 한때 극우라는 사람의 의견도 과감하게 싣고 있고요.
다른 지면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나 사회현상이 있으면 경향을 통해 세상을 다 볼 수 있고 좌와 우가 통할 수 있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저의 구호는 '보수로부터도 존경받는 신문이 되자'입니다. 사실에 충실하고 왜곡하지 않으면 보수 쪽에서도 찾아서 읽을 것이고, 보수의 입장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반쪽자리가 아니라 진짜 신문이 될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한국에 그동안 없었던 신문이 될 것이고요. 그것의 다른 표현이 '보수로부터 존경받는 신문'입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했던 이야기입니다만, '경향'은 고유명사이고 '신문'은 보통명사죠. 저는 '신문'을 만들려고 합니다. 경향을 통해 신문의 보편성을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신문'이 각인되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언론입니다. 

강동경 : 김상봉 교수의 삼성 비판 칼럼을 싣지 않았다가 기자들의 비판으로 사과문을 실었는데요. 스스로 광고주를 의식해서 싣지 않은 건지, 아니면 실제로 압박이 왔던 것인지요. 또 그와 별개로, 그 사건 이후에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이대근 : 그 건에 대해서는 아시다시피 사과를 드렸습니다. 편집국 안에서 토론해서 입장을 정했습니다. 그 입장대로 지금 가고 있고요. 내부에도 견제와 감시 장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압력을 적절히 견제하고, 우리가 써야할 것을 쓴다는 원칙을 잘 지켜나가고 있고, 그 이후로 그런 일은 되풀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은 자기교정 능력이 있고, 나름 진화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가자 :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이대근 : 기자는 '최초의 목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처음 보고, 처음으로 전달해주는 사람입니다. 최전선에서 다양한 사건의 목격자가 되고, 자기가 보고 해석한 걸로 세상에 전파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자랑스러운 직업이고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첫째로, 긴장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보는 게 제대로 보는 건지, 스스로 회의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본 게 맞는지 아닌지, 일부인지 생각하고 회의해야 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훌륭한 언론인이 될 수 없습니다.
훌륭한 기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이게 전부다'라는 게 깨지고 부정되는 과정입니다. 세상은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크고 다양합니다. 함부로 미신처럼 고정관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카드에 선을 세 개의 선을 그었는데 두개는 크기가 같고 하나는 다릅니다. 길이가 다른 선을 고르라고 해놓고, 두어명의 가짜 실험대상이 일부러 틀린 답을 고릅니다. 그러면 실험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길이를 눈으로 인식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고른 답을 고릅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실수할 확률이 1%인데 타인과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간 사람이 60%였습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경찰관이 실험자들을 컴퓨터 앞에 앉히고, Alt 키를 누르면 컴퓨터가 다운된다고 일러줍니다. 잠시 뒤 컴퓨터가 다운되고, 경찰은 '당신이 Alt 키를 눌러서 망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누르지 않았는데도 '자백'을 하는 사람이 70%였습니다. 옆에 '가짜 목격자'를 두어 '당신이 눌렀다'고 하면 90%가 '내가 잘못했어요' 합니다.

전압을 높이는 실험도 있습니다. 전압을 높여 타인에게 전기충격을 주게 합니다. 저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서 전압을 올리라 지시합니다. 전기충격을 받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옆에서 '괜찮다, 계속 올려라' 하면 100V 200V 300v 계속 올립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여럿이 앉혀 놓고, 다시 실험을 합니다. 이번엔 한 사람이 '나는 못하겠다!'며 실험을 거부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도 전압을 올리는 걸 중단합니다.

실험실이라는 것, 박사, 권위자, 제도, 경찰, 공권력, 이 모든것이 기성제도에요. 이 기성제도가 "이게 옳다, 이거 해도 괜찮다" 하면,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알면서도 계속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단 한사람이라도 옳지 않다, 잘못됐다고 분명한 판단을 내리면 사람들이 따르게 됩니다.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은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바꾸게 해요.

한국사회를 보십시요. 기성 방송이 있고 경찰이 있고 권력이 있고, 기성 체제가 내리는 정책에 대해 개개인이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경향신문은 보고들은대로 '아니다'라고 말하는 신문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