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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편집장의 눈] 아니 땐 굴뚝

이명박 정권 도덕성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핵심 측근들의 비리는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면 차라리 ‘도적(盜賊)’에 가깝지, 공직자라 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김해수 전 정무1비서관, 김두우 전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은진수 전 감사위원…. 모두 ‘이명박의 남자들’입니다. 대통령은 “내 임기 중 측근비리는 없다”고 호언했지만, 이들은 집권 이전부터 시작해 청와대 근무 내내 현금에 상품권에 카드를 월급처럼 받아 챙겼습니다.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에 연루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구속, 대검찰청을 나오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비리 측근들의 공통점은 검찰에 소환되기 전까지는 “억울하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검찰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딱 잡아 뗀다는 점입니다. 김두우 전 홍보수석도 해명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며 “내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1억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검찰은 우리 편’이란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심경을 묻자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압권은 신재민 전 차관입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인수위 시절 한달에 1000만~1500만원을 건넸고, 문화부 차관때는 법인카드를 줬는데 매달 1000만~3000만원씩 쓰더라”고 폭로했습니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할 때는 10억원을 제공했다고 하죠. 물론 신재민은 이런 내용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신재민 전 차관 부부가 임명장 수여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재민은 지난해 문화부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매년 소득보다 2000만~6000여만원을 더 지출했음에도 희한하게도 재산은 해마다 5000만~1억원씩 불어나는 ‘마법같은 재산 증식’ 기술을 보여 눈길을 모았습니다. 민주당 장병완 의원이 인사청문회 때 신재민이 낸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9년의 경우 차관 급여로 8957만원을 벌어 신용카드 사용 등 생활비로 1억5210만원을 쓴 것으로 신고돼 있습니다. 6253만원의 적자가 난 셈이죠.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해 신재민의 예금은 2933만원, 부인의 예금은 1711만원 증가했고 빚도 2000만원을 갚았습니다. 2008년에도 소득보다 지출을 더 많이 했음에도 적자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재산이 4000만원 가량 늘어났습니다. 당시 신재민은 의원들의 질의에 “과거에 일어난 금전적인 부분을 일일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이국철 회장의 폭로를 보니 이제 그 미스테리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은 장관을 시키겠다고 내정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하자 없다’고 검증필을 찍어줬습니다. 얼마전 신임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은 경기 분당의 47평 아파트를 9000만원에 샀다고 해서 “차라리 국토해양부 장관으로 가지 그러냐”는 조롱을 받은 적이 있었죠. 세간에선 정권의 이런 인사를 놓고 한숨과 분노, 비탄의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더군요.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인 그는 지난 대선 때 김윤옥 여사를 수행하는 비서실장 역할을 한 뒤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장관까지 올랐으니 참으로 좋은 세상 만났습니다.    

MB정권에서 장관을 하려면 4대 필수과목(병역비리,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중 하나 이상은 이수해야 된다는 얘기는 빈 말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가 예외없이 4대 필수과목 이수자입니다. 장관은 산하 수십, 수백개 공기업과 기관의 장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정권 말기로 접어든 현재 공공기관장의 64%, 상임감사의 82%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습니다. ‘정전 대란’을 일으킨 한전과 자회사 11곳의 감사는 11명 전원이 ‘전력의 전자’도 모르는 MB 선거캠프나 인수위,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인사와 검증과 공직기강 감시를 맡은 모두가 한 통속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무회의에서 “권력형 비리나 가진 사람들의 비리를 아주 신속하고 완벽하게 조사해달라”고 지시했다.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 외교 전문 가운데 2007년 9월 19일자 미 대사관발 비밀 전문(confidential)은 KBS 고대영 보도본부장을 ‘미 대사관의 잦은 연락선’(frequent Embassy contact)으로 적고, 그가 말한 이명박 대선 후보의 인물평을 전했습니다. 전문에서 이명박 후보는 ‘탈법에 대한 죄책감이 없고, 주변에 측근들만 있는’ 인물로 묘사돼 있습니다.

이른바 핵심 측근들의 처신을 보면 이 정권이 그동안 어떻게 돌아갔는지 짐작이 갑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가 물이 새듯 줄줄 까발려질지 모릅니다. 벌써 ‘박태규 리스트’니 ‘이국철 리스트’니 연루 인물들의 명단이 나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제 뒤늦게 사정 특별기구를 만드니,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여니 하지만 수습용 ‘쇼’로 비칠 뿐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김두우나 신재민 같은 태생이 그런 사정기구가 없어서 돈 챙겼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영원한 비밀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는 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