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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눈

[여적] 박석(薄石)

박래용 논설위원


박석(薄石)은 구들장처럼 넓고 얇은 돌이다. 단단한 화강암이 99%이고 대부분 옅은 회색이나 담홍색을 띠고 있다. 크기가 일정치 않으며 표면도 울퉁불퉁하다. 옛 궁궐 조정에 박석이 많이 깔린 이유는 왕과 신하에게 반사되는 햇빛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요, 가죽신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춘원 이광수는 소설 ‘단종애사’에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호한 신숙주의 곡학아세 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숙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 엎디인 박석을 적시었다”고 썼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과 불광동 사이 구파발로 넘어가는 통일로 한 편에는 얇은 돌이 깔린 박석고개가 있다. 누가 왜 깔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풍수지리상 지맥 보호를 위해 깔아놓았다는 설도 있고 주변에 궁궐에 들어가 일하는 사람들이 땅이 진 이곳을 흙을 묻히지 않고 지나기 위해 깔았다는 얘기도 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석 묘역’이 23일 서거 1주기에 맞춰 공개된다. 3206㎡ 규모의 묘역 바닥에는 추모 글을 새긴 가로·세로 20㎝ 크기의 박석 1만5000여개와 아무 글도 쓰지 않은 자연 박석 2만3000여개가 깔려 있다. 

‘보고싶어 어찌하나요. 미안합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대통령’ ‘이제 누가 있어 함께 갈까요’ ‘다 버린 당신께 내 마음을 드립니다’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박석 하나하나에는 국민들의 절절한 추모의 글이 새겨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투신 소식을 듣고 첫 일성을 토했다는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다’란 말도 적혀 있다. 서거 1주기를 맞아 전국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겁다. 서점가에는 ‘노무현 현상’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무현을 키워드로 출간된 도서만 128종이라고 한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차원의 반성과 후임 정부에서 연일 되풀이되는 남북간 평화시스템의 붕괴, 원칙과 상식의 훼손,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 권력기관의 횡포 등 급격한 민주주의 퇴행상을 보고 겪으면서 새삼 그의 가치를 절감한 때문이란 분석이다. 

노무현은 갔지만 ‘노무현 정신’은 살아 남아 있는 것이다. 박석은 얇지만 그 돌에 새긴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 희망의 다짐은 훨씬 깊고 두꺼운 것 같다.